선생의 말씀은 새겨서 들어야지 들리는 대로 따라하다 보면 엉뚱한 결과를 빚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이 엉뚱한 짓을 자주하면 사람들로부터 좀 모자란다는 뒷말을 듣기가 쉬운 법이다.

조선조 선조시대 율곡선생은 분명 선각자였다. 어느 유자(儒者)보다도 시대를 앞서서 꿰뚫어 보는 정신을 율곡 선생은 간직했었다. 그래서 선생은 시샘도 많이 샀고 시기도 받았다. 그러나 명륜관 유생들은 율곡선생을 높이 받들었던 모양이다. 선생의 침모(針母)가 어느 날 도포의 왼편 가슴팍에 불구멍이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불은 붉은색이니까 빨간 헝겊으로 그 불구멍을 막아야 한다고 침모는 생각했다는 게다. 그래서 침모는 그 구멍을 붉은 헝겊으로 기웠다. 대인인 율곡선생인지라 흰 바탕에 빨간 헝겊 쪽으로 기워진 도포일지라도 아무 말 없이 입고 명륜관에 나왔다고 한다.

그러자 다음날 명륜관의 학생들 왼편 가슴팍에 빨간 딱지가 모조리 붙어 있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물론 위의 이야기는 지어낸 것이겠지만 왜 이러한 우수개 이야기가 만들어져야 했을까? 아마도 여기에는 주자의 말을 꼭두각시처럼 받아들이고 앵무새처럼 종알대는 당대의 유생들을 비꼬아 주는 속뜻이 숨어 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속사정도 모르고 무턱대고 따라하는 행위를 얼마나 신랄하게 비꼬고 있는가!


공자께서는 본받아 할 뿐 조작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율곡 선생 때 유생들이 공자의 이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었더라면 위와 같은 우스개 야사를 남기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공자께서 본받는 것은 맹목적인 것은 아니다. 인간의 도리에 맞기 때문에 옛 성인의 말씀을 본받으라고 타일러 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본받으란 말인가? 도를 본받으라는 말씀이다. 공자의 도는 물론 인의예악(仁義禮樂)에 있다고 보아도 된다. 인(仁)이란 무엇인가? 나보다 먼저 남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의(義)란 무엇인가? 인(仁)을 철저하게 실천하라 함이다. 그리고 예(禮)란 무엇인가? 나에게 엄하고 남에게 너그럽게 하며 분별하라는 것이고 악(樂)이란 마음속에 만족을 누리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도를 본받아야 하지 유린하거나 악용하지 말라고 공자께서 당부해 두었던 셈이다. 그러므로 공자의 말씀을 무턱대고 옛것을 따라하라는 말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으며 또한 윗사람의 짓을 앵무새처럼 흉내 내라는 말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그러니 율곡선생의 가슴팍에 붉은 헝겊이 붙었다고 줄줄이 따라했던 짓은 웃음거리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웃음거리가 어디 그때에만 있었는가? 지금도 여전히 인간 앵무새들이 여기저기서 득실거리고 있다.

인간은 배가 고프면 사나워지고 배가 부르면 방탕해진다. 사나운 인간도 사람의 길을 벗어나고 방탕한 인간도 사람의 길을 벗어난다. 그러나 배가 고프면 살 수가 없다. 인간으로 살 수 있게 해야 사랑의 도는 유지된다. 지금 우리는 배고픔의 고통을 벗어난 상태를 맛보고 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는 턱없이 방탕해지고 겁 없이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부류들이 많아지고 있다. 결국 배부름이 우리를 타락하게 하는 두려움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 두려움을 어떻게 걷어치울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공자의 해답은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다. 사람이 되라는 경종을 울리기 때문이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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