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진 대전 선병원 정신과장

기온이 떨어져 일교차가 심해지는 가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감기로 병원을 찾거나 미리 감기를 걱정하며 독감예방접종을 한다. 하지만 몸과 마찬가지로 일조량이 감소하면 대뇌 세로토닌 신경세포의 활동성이 감소하면서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 유발되기 쉬운 조건이 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기분이 가라앉는 다든지 가슴이 허전해진다든지 하는 기분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대인관계나 직업 활동 등에 지장을 주지 않는 정도의 허전하고 쓸쓸하며 다소는 울적하기도 한 기분은 대부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자율신경계의 적응기전에 의해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그러나 신경세포의 기능이 회복되지 못하고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어 거의 하루 종일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거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기간이 2주 이상이 되면서, 불면 또는 과다수면, 초조감, 집중력 감소나 두뇌회전의 느려짐, 지속적 피로감, 죄책감과 죽음에 대한 집착 등의 증세를 느끼게 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되면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독감을 앓게 된다.

이런 대표적인 우울증의 증상 외에도 다양한 증상을 나타내어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알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우울증의 한 종류인 가면 우울증의 경우에는 우울한 기분을 느끼지는 않으면서 주로 두통 등의 통증을 호소하거나 속 쓰림, 소화불량, 삼킨 음식물이 식도에서 걸리는 증세, 폭식과 구토 등의 식이장애증세 등을 나타내며 심지어 사지마비증세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많은 우울증 환자분들은 우울감 보다는 식욕부진과 그에 따른 체중감소, 기운 없음 등을 주로 호소하여 내시경검사, 수액치료 등의 내과적 치료를 받다가 뒤늦게 우울증 치료를 받는 경우도 흔하다. 주로 우리나라에 독특하게 존재하는 우울증의 한 형태인 홧병의 경우에는 우울감 보다는 가슴 두근거림, 가슴 답답함, 체한 듯한 느낌과 함께 초조하고 불안해지다가 몸이 더워지며 주로 상체부에 열감이 느껴진 후에 열이 내리면서 식은땀이 흐르는 자율신경 실조증세가 주로 나타난다.

우울증은 모든 연령과 사회 계층에서 발병할 수 있지만 인생이 반환점을 돌아서는 40~50대에서 가장 흔히 발생한다. 중년기에 우울증이 가장 호발 하는 것은 인생 전반기의 젊음이 뚜렷이 사라지는 신체노화가 가속화되는 경험과 함께, 가정과 사회에서 추구하던 현실적인 목표들을 포기하거나 달성하게 되면서 더 이상의 목표가 없어져 삶의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

현대 정신의학은 세포연접부의 신경전달물질을 증가시키는 정신약물치료와 다양한 정신치료를 통해 우울증환자들에게 효과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삶의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활력을 잃어버리는 우울증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오는 것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평상시의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삶의 후반기까지 지속적인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습관을 통해 신체건강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삶의 문제점을 덮어 버리지 말고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을 찾아 실천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과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여, 자신이 삶의 어느 순간을 살고 있는지 자주 자신의 삶의 시간표를 돌아보는 삶의 자세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