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으로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여름밤이었다. 잠결에 들리는 울음소리에 흠칫 놀라 잠에서 깨었다. 그러나 오금이 붙어 선뜻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가만히 바깥 동태만 살폈었다. 그 울음소리는 끊어질 듯 이어질 듯 바로 지척에서 들려왔다. 그날따라 마침집안에 남편도 없었고 막내딸과 단둘이 지낼 때였다. 순간 왠지 모를 공포가 엄습해 왔다. 불도 미처 켜지 못하고 어둠 속을 더듬어 가까스로 거실로 나와 보니 밖엔 천둥 번개가 치고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 빗속에서 웬 사람의 모습이 얼씬 거렸다. 그것을 보자 나는 필경 정신병 환자가 우리 집에 침입한 것이라는 생각에 거실 한 구석에 세워둔 호신용 야구 방망이를 힘껏 양손에 쥐었다. 그리곤 잔뜩 긴장 한 채 경찰서에 신고하려고 전화 수화기를 집어든 순간이었다. 이때 근처 학교 운동장에 환하게 밝힌 가로등 불빛 아래로 그가 걸어오고 있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속에 얼핏 드러난 모습은 다름아닌 친정어머니가 아닌가.

어머닌 비를 흠뻑 맞은 채 우리 집 정원에 심어진 구찌 뽕나무를 또 부둥켜안고 울고 계셨었나보다. 폭풍이 몰아치자 어머닌 아마도 그 나무가 폭풍우를 맞는 게 안쓰러워 밖을 나왔으리라.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서 있는 나무가 떠오르자 어머닌 불현듯 남동생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잠자릴 박차고 정원으로 나왔으리라. 그 당시 우리 집 정원에 심어진 구찌 뽕나무는 몇 해 전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막내 남동생이 살아생전 어린 묘목을 구해 어머니에게 준 나무였다. 어머닌 그것을 아파트 화단에 심어 마치 자식 돌보듯 하였었다. 해가 갈수록 나무는 튼실하게 자라 제법 봄이면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기 시작했었다. 어머니의 아파트 화단에 뿌리를 내린 그 나무는 동생이 세상을 뜬 이후론 어머니의 자식 잃은 슬픔을 적으나마 달래줄 수 있는 유일한 위안물이었다. 젊은 나이에 세상 떠난 막내아들이 보고 싶을 땐 어머닌 밤낮 가리지 않고 그 나무를 마치 당신 아들 보듯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곤 했었다. 심지어는 누군가 캐어갈지도 모른다는 기우에 마치 아이에게 이름표를 달아주듯 어머닌 팻말을 준비해 '김홍길 나무'라고 당신 이름 석 자까지 써서 나무 앞에 떠억 말뚝을 박아놓기도 했었다.

지난 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구입했던 주택을 얼마 전 팔았다. 그리고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 때 어머닌 겨울철 칼바람에 나무가 얼어 죽으면 안 된다고 이불을 '김홍길 나무'에 친친 두르고 왔었다. 어디 이뿐이랴. 어머니를 위해 얻어드린 아파트 전세 기간이 아직 6개월 정도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어머닌 겨울에 이사하면 '김홍길 나무'가 얼어 죽을지 모르니 미리 이사를 하겠다고 우겼다. 하는 수없이 어머니 걱정을 덜기 위해 부득이 기한 전 집을 옮기고 말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이사한 아파트는 주민들이 이사할 때 캐온 나무를 아파트 화단에 심을 경우 딴 곳으로 갈 땐 캐갈 수 없다고 한다. 어머닌 나중에 당신 나무를 캐갈 수 없다는 아파트 관리소 말에 화분에 그 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며칠 못가 시들시들 제 빛을 잃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그토록 무성하던 푸른 잎을 몽땅 떨군 채바짝 말라죽었다. 그러자 어머닌 그 나무를 끌어안고 마치 자식 잃은 슬픔처럼 눈시울을 적시기까지 하였다. 죽은 나무를 내다버릴까 하다가 그토록 어머니가 애지중지 한 나무인지라 혹시 하는 마음에서 우리 아파트 화단에 그 나무를 옮겨 심었었다. 나무를 옮겨 심은 지 보름 후 그토록 이파리를 다 떨궜던 '김홍길 나무'가 자연의 품으로 돌아와서인지 다시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나무에 수액이 도는 듯 드디어 새잎까지 피웠다. 작은 기적이 일어나고야 말았다.'김홍길 나무'가 생장 활동에 들어간 것임엔 분명 하다. 이는 어머니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 덕분이 아닐까 싶다. 어머닌 날마다 시피 우리 집에 와 그 앙상하고 메마른 나무가 제대로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도록 하루에도 몇 번씩 나무를 들여다보고 물을 주곤 했었다. 심지어는 나무 앞에 서서 어서 푸른 잎을 피우라고 축원까지 했었다.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을 나무는 알아챘을까?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 쓰레기 장 바로 뒤편에 '김홍길 나무'는 나날이 그 푸름을 더하며 무성한 잎을 자랑하고 있다.

요즘 서울시에서 시민들이 가로수를 입양해 가꾸는 '나무 입양 가꾸기 캠페인'을 벌이는 것을 접한 후 참으로 좋은 아이디어임을 깨달았다. 사람이든 나무든 따뜻한 사랑과 관심은 때론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잖는가.



/김혜식 하정문학회 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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