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설(釣說)은 조선 현종대의 약천 남구만 선생이 낙향하여 지내던 중 낚시꾼과의 대화를 통해 또다른 인생철학을 깨우친다는 내용을 적은 이야기다. 고향에서 남구만 선생이 여러 손(客)의 도움으로 낚싯바늘, 낚싯대 등 낚시를 배웠지만 매일 몇 마리의 고기를 잡는데 불과했다. 이를 본 어느 노련한 손(客)이 말하기를 "귀공은 이미 낚시의 법(法)은 다 배웠지만 그 묘(妙)는 아직 다하지 못하였다"하며 선생의 자리와 낚싯대를 넘겨 받더니 이내 물고기를 잡는 것이 마치 광주리 속에서 집어 소반 위에 올리는 것과 같았다. 선생이 "같은 낚싯대, 같은 자리에서 바뀐 것은 다만 사람뿐인데 그 차이는 왜 인가? 이를 나에게 가르쳐 줄 수 있겠는가?"하였더니, 그 손(客)은 "법(法)은 가르칠 수 있지만 묘(妙)를 어찌 말로 가르칠 수 있는가! 가르칠 수 있다면 묘(妙)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귀공이 나의 법에 따라 조석으로 낚싯대를 드리우고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익히고 또 익혀서 터득한다면, 손이 저절로 나가고 마음이 저절로 움직일 것이다. 이런 일들은 혹 얻을 수도 얻지 못할 수도 있으니 이는 모두 그대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선생은 낚싯대를 던지고 "손(客)의 말씀이 참으로 훌륭하다. 미루어 나간다면 어찌 다만 낚시에만 쓸 뿐이겠는가! 옛사람이 말하기를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비유할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종류가 아니겠는가!"하고 감탄하였다.


-일의 성패는 묘(妙)의 유무


남구만 선생의 조설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세상에 꼭 맞는 이치를 시사하고 있다. 조설의 법(法)을 사람마다의 학력이나 지식의 정도, 주어진 여건 등에 비유한다면, 묘(妙)는 이러한 여건 등을 활용하여 결과를 이끌어 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전체에 있어서 아니면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도 목표를 세우고, '법(法)' 즉 그 기반을 튼튼하게 잘 다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성패여부를 가름하는 것은 묘(妙)의 유무와 그 크기일 것이다. 그러나 조설은 "가르칠 수 있다면 묘(妙)가 아니다."라고 했다. 묘(妙)를 얻는 것도 그리고 그 크기를 정하는 것도 순전히 각자 개인의 몫이며 목표에 대한 열정과 땀의 결과일 것이다.


-혹독한 자기수련으로 체득하여야 하는 묘(妙)


우리는 종종 겉으로 보여지는 학력이나 여건 등으로 자신을 내세우기도 하고 또는 남을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대부분 조설에서 말하는 단지 몇 마리의 고기만을 낚는 법(法)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일부의 사람들은 법(法)을 갖추고 나면 모든 것을 다 이룬 것으로 착각하고 안주하거나 더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특히 훌륭한 학력과 학위 등으로 무장한 젊은이가 사회에 진출한 이후 더 이상 발전이 없거나 심지어 낙오하는 경우가 있다. 세상에 모든 영역이 그저 법대로, 배운 대로만 하면 되는 그런 만만한 곳은 없다. 배운 것 이상으로 혹독한 자기 수련을 겪는 과정을 통해 체득하여야 하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이 법의 본래 모습을 잃지 않고 운용의 묘를 얻는 길일 것이다. 특히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법(法)과 묘(妙)를 이어주며 묘(妙)의 크기를 결정하는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익히고 또 익혀서 터득"하려 하는 개개인의 끈질긴 노력과 성실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용국 충북도 미래산업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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