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는 인간에게 오로지 지식과 탐구만을 강요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꼭 필요한 나눔의 정이 갈수록 소멸돼 갖가지 사회문제를 양산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그런 반면에 인간사회에서 삶의 가장 기본이라 할수있는 음식욕구는 옛 어머니의 손맛만을 찿던 때와는 달리 과거에다 현재, 혹은 미래의 맛까지 혼합시킨 '퓨전'이란 이름을 내걸고 현대인들의 입맛을 자극하고 나선다. 이렇게 현대사회를 지배하며 인간의 성장을 돕는 식욕과 탐구욕구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활을 하는것 또한 사실이다. 이 외에도 우리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욕구는 참으로 복잡하고도 다양하다.

인간의 삶속에 동반되는 욕구들을 충족시키고 해결하는 방법 여부와 정도에 따라 우리 삶의질이 결정되는 것이다. 우선 욕구해결 문제는 인간에 대한 고정관념이며, 특히 젠더로 여겼던 관계성과 친근감, 상호배려, 사랑 등이 기저에 깔려있는 '보살핌의 윤리'가 함께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본인의 삶보다 더 나아지길 바라며 사랑과 배려로서 자식들의 권위를 높여주기 위해 부모님의 헌신적 양육과 제자들을 향한 아낌없는 관심 및 수용의 자세로 임하는 선생님들의 열정적 '보살핌의 윤리'에 기인한 것 아니겠는가.

위해흉물인 쥐도 임신을 하거나 새끼에게 젖을 먹일때만은 수컷이 접근하면 자신의 새끼를 보살피기 위해 맹수적 공격성을 보인다. 자식을 위한 양육자의 지극한 정성과 용맹성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부모님에 의해 학대를 받는 아동들 사례가 간혹 사회적 가심거리로 떠오르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부모님들은 자식문제라면 조건을 따지지 않고 깊은 사랑속에 보살핌으로 나선다. 이같은 보살핌은 단순 양육 뿐 아니라 인간사회 삶 속에서는 없어서도, 그 가치가 떨어져서도 안 될 매우 중요한 윤리적인 문제인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보살핌의 윤리가 급속한 사회발달 속도에 부합하지 못함으로써 이를 대신하기 위해 등장한 정의의 윤리에까지 밀려나는 추세다. 수시로 변화하는 사회적 흐름에 원활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진정성보다 사회질서와 규칙으로만 판단하고 결정하려는 경향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안타깝다. 결국 사회공동체라는 광범위한 조직과 진정한 변화성 발달은 차후 문제로 등한시 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최근 우리 주변에서 자주 발생하는 다양한 묻지마식 범죄현상들은 일륜성 상실의 극치를 보여주며 오로지 자기 집착과 자기 우선성을 보이는 경향이 지배적이지 않는가.

한 동안 타인과의 관계를 중시하며 화합을 전제로 한 배려와 수용, 서로 사랑하고 공감을 중시하는 보살핌의 윤리가 우리 여성들이 지닌 특성과 일치한다는 이유로 등한시되던 전근대적이며 사상에 대한 편견은 분명 재고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같은 보살핌의 윤리는 어찌보면 시대의 흐름이 강할수록, 그리고가족체계가 단일화될수록, 소규모의 조직체계가 다양하게 형성될수록 없어서는 안될 무척이나 중요한 사회적 이념이라 생각한다.

1인당 총국민소득(GNP)이 2만달러가 넘는 급변의 디지털시대를 살아가려니 주변상황을 살필 겨를이 없다는 변명을 늘어놓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 삶의 향상은 절대 혼자서는 이룰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친구간, 동료간, 이웃간의 윤리적 관계함 속에서만이 무었이든 성취될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인간이기에 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가장 기본으로 생각하고 지켜나가야만 한다.

그래야만 구성원간의 진정한 정(情)과 진보적 발전, 그리고 인간다움이 녹아있는 사회가 형성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잊지 말아야 한다.

최근 연이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발생, 세상을 놀라게 만들고 있는 이른바 '묻지마식 범죄'의 근원은 부실한 사회안전망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수 있지만 우선적으로는 상호간, 이웃간, 조직원간 반드시 필요한 '보살핌의 윤리' 부재 때문 아닌가.



/김영대(충북도립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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