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치 지망생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 메일로도 문자로도 간곡하게 참여를 독려하는 바람에 가는 김에 다른 약속 하나를 더 잡고서 서울로 향했다. 역시 유명인답게 주인공과 악수를 하기 위해 긴 줄이 이어졌다. 환한 웃음을 지며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는 그를 멀리서 바라보았다. 가끔 호탕한 웃음소리도 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나도 한참을 기다리다 손을 내밀었다. 그는 앞사람과 한두 마디 더 하느라 손은 내 손을 잡았지만 눈은 그분으로 향했다. 그리고 바로 뒷사람에게 시선을 보내는 바람에 눈도 맞추지 못하고 그냥 떠밀려나갔다. 순간 난감했다. 무안쩍은 마음으로 무리에서 떨어져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눈도장을 찍기는 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화환 사이로 여기저기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아는 사람들이 안 보였다.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서울에서의 다른 약속시각이 다가왔다. 행사장 안을 비죽이 들여다보니 공연을 하느라 누가 누구인지 분간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소란했다. 수천 명은 족히 모였을 법했다. 내 존재감에 대해 확인을 해줄 누구도 없는 상황이다. 괜히 왔나 싶기도 했다. 평소에 존경하는 교수님이라 혹시라도 출판기념회가 썰렁 할까 봐 올라갔는데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고, 아주 각별하게 지내는 사이도 아닌지라 어쩌면 그분이 나를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났다. 그런 생각이 들자 열심히 악수하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툭 던지듯이 인사를 할 수도 없었다. 찝찝한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떠나면서 방명록 한 귀퉁이에 몇 자 적고 나왔다. 혹시 이름만으로 나를 기억하지 못할까봐 '천안 유인순'이라고 소심하게 적었다. '기억'보다'기록'에 기대어 보기로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악수를 할 때마다 유심히 상대의 눈을 마주 본다. 그전에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습관이 눈에 들어왔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악수를 하며 내 눈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다음에 악수할 사람을 바라보느라 손과 눈이 따로 따로였다. 어떤 이는 악수를 할 때에 손가락 끝만 살짝 대주고는 슬쩍 빼낸다. 물론 눈도 이미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 손을 꼬옥 잡고, 살짝 위아래로 흔들고,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지어주는 모든 행동이 들어 있는 악수(握手)를 대하기가 드물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고한 마더 테레사님의 시가 생각난다.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난 한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수많은 대중의 마음을 사기 위해 하루 종일 악수를 하는 정치인이나 단체의 단체장으로 출마해서 한 표라도 표를 더 얻으려고 노력하는 후보자들이 수많은 사람과 접촉을 하며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 그런데 누구에게도 가 있지 않은 마음을 들킨다. 수 천, 수 만의 마음을 한꺼번에 안으려는 조급함으로 단 한 사람에게는 소홀하게 지나친다.

천천히 따뜻하게 손바닥을 통해 진정성이 전해지는 악수, 조금 느리게 한 사람에게 머문 몸짓이 수 천 수만의 행인을 바라 본 것과 비교 할 수 있으랴. 서로의 눈을 통해 짧은 의사소통을 하는데 단 2초면 충분하다.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이 흔하게 사용된다. 오늘도 그렇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따뜻한 눈웃음이 기억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나도 그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다.



/유인순 한국문인협회 천안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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