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 받지 않고 내 스스로 알아서 하는 가정교육에서 자라왔다. 모든 면에서 스스로 하는 습관에서 자라다 보니 좋은 점도 많았으나 통제된 사회 속에서 자라는데 일부 적응 못하는 문제점도 있었다.

대학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서 경제적인 면에 거의 독립된 생활을 해왔다. 스케이트장 관리, 스케이트 날갈이, 중·고 학생 과외, 포장마차 등 많은 아르바이트로 남부럽지 않은 수입을 올렸다. 그 당시 다섯 팀의 학생과외는 충분한 수입을 올려 대학생활 내내 집에서 받는 잡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통제 속에서 자란 친구들과 사고는 확실히 달랐다. 그들 나름대로 하는 일이 거의 없고 지시에 의해 주어지는 일은 잘해냈다. 그들 나름대로 잘해 나갔지만 스스로 하는 일에는 망설임이 많았다.

나름 체육 교육에 얼마간 관심을 가져왔고 현재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엘리트체육 교육과 생활체육 교육의 두 길의 중앙에 서 보았는데 꼭 한 길만 택하는 것이 가장 옳은 것은 아니다고 분명 생각한다.

체육 전문인이 들으면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엘리트 체육의 문제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모두들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도 체육교육에서도 혁명을 하지 말고 변화하는 모습이 좋을 것이란 주장이다. 엘리트체육의 단점만 찾고 생활 체육의 장점만찾는 우를 범하지 말고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의 조화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

작은 나라와 큰 나라, 돈이 없는 나라와 돈이 많은 나라 이와 같이 서로의 차이점을 상관하지 않고 정책에서 무조건 따르는 일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작은 나라에서는 어쩔 수밖에 없는 엘리트 체육, 스파르타식 교육을 실행한다. 돈이 많고 큰 나라는 생활 체육을 하던 자유롭게 교육을 해도 좋은 선수가 나올 수 있고 스스로 체육 인재가 양성된다.

나라마다 서로 다른 환경과 조건을 가지고 있는데 동일한 체제의 교육을 실시해서 될 일은 결코 아니다. 일본의 교육 현장에서 생활 체육이 매우 성행하고 있다. 그 결과 좋은 성과를 얻은 것을 엿 볼 수 있다.

비근한 예로 청주에 있는 모 고등학교와 자매결혼을 맺고 있는 일본의 한 고등학교의 생활 체육으로 선발된 운동선수와 우리 충북의 엘리트 체육으로 선발된 운동부와 친선경기를 얼마 전에 가졌다. 여지없이 우리가 일본에게 졌다. 단적인 예지만 생활 체육의 우수성을 보여준 예이다. 이 결과를 가지고 속으로 아우성이지만 조용히 넘어갔다.

전문가 몇 분은 이제는 오직 생활 체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활 체육의 성과를 모두 과대 포장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의 미래는 분명 생활 체육이다. 맞는 말이다. 완전한 생활 체육은 우리 교육에서 앞으로 나갈 길임은 확실하다.

성인에 가까운 학생들은 자유를 주어야 하겠지만 그 전의 나이 어린 학생들은 자율과 통제 속에 교육 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라 우리식의 절제된 교육 제도에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 두 정책을 우리 현실에 알맞게 보다 차분히 분석해 오늘에 또한 미래에 맞게 해나가야 한다. 이것이 시기에 맞지 않을 시 우리 체육에 커다란 문제를 야기 시킬 것은 분명하다. 미국과 일본의 실제만을 생각하지 말고 우리 현실을 보다 신중히 분석하여 우리에 맞는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얼마 동안 모든 국민의 가슴을 풀어준 올림픽, 정치보다 더 좋은 결과를 올림픽에서 보여주는 것이 과연 엘리트 체육의 결과인가. 생활 체육의 결과인가 신중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낙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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