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노타마(火の玉)', 일본말로 불덩어리라는 뜻이다. 또한 정열과 신념을 가지고 맡은 일에 매진하는 사람을 '히노타마 같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나는 불덩어리 선생이다. 훨훨 타오르는 불덩어리처럼 불꽃을 튕기고 내뿜으며 하루하루를 뜨겁게 산다.

나는 내 생의 모든 것을 내가 사는 이곳 한국을 위해 투입한다. 돈이나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내가 가진 모든 것,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한국을 위해 아낌없이 쏟아내며 산다. 1997년 12월, IMF 사태가 터졌을 때 나는 누구보다 먼저 은행에 달려갔다. 귀한 아들이 태어났다고 친척, 지인들이 선물해 준 소중한 물건들이었지만 나라를 살릴 수 있다면 그까짓 금붙이 따윈 아깝지 않았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 우리 아들 녀석들도 그 때의 내 심정을 알게 되면 아버지를 이해해 주겠지. 나는 이렇게 25년이라는 꽤 오랜 세월을 한국에서 살아왔다. 친구들, 제자들, 아내 그리고 아이들, 내게 소중한 것들, 내가 사랑하는 것들 중에 한국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대학에 적을 두고 있다 보니 지금 나의 으뜸 관심 대상은 뭐니 뭐니 해도 사랑하는 우리 제자들이다. 지방의 전문대학을 다니는 학생 중에는 결손가정의 아이들이 많고, 가난하고 아픈 학생들도 많다. 몸이 아픈 아이, 마음이 아픈 아이, 한국에는 왜 이리도 아픈 아이들이 많은가? 어린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면 그 후유증 때문에 사소한 일에도 쉽게 동요하고 좌절한다. 튼튼한 가정의 울타리가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크게 일희일비하는 우리 제자들. 청춘의 바다에서 출렁이는 파도를 앞에 두고 겁먹고 불안에 떨며 힘들어 하는 학생들, 그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들이 기뻐서 웃으면 나도 같이 웃고, 슬퍼서 눈물지으면 나도 덩달아 운다. 돈이 있으면 함께 먹고 없으면 함께 굶는다.

나는 제자를 1대1, 맨투맨으로 밀착 마크한다. 방학 때 배우겠다는 의지가 있는 학생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학교에 나와 교실에 앉혀놓고 가르친다. 내가 일본어 선생이니까 가르치는 것은 일본어지만 나는 일본어를 가르치면서도 마음속에선 그 아이에게 인생의 응원가를 불러준다. "얘야, 열심히 하렴, 지금은 힘들어도 너는 꼭 잘 될 거야", "좀 더 용기를 내!!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 나에게 학생은 그냥 제자가 아니라 피만 안 섞였을 뿐 진정 아들이고 딸이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어서 내 제자가 된 건지는 모르지만 쳐다보기만 해도 그저 가슴이 뭉클해지고 아프다. 내게 돈만 있으면 장학금도 팍팍 주고 얼마든지 해외에도 보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내가 너무도 무능력하고 한심하게 느낄 때가 많다.

요즘 학생들의 최대 관심사, 취업 자리를 발굴할 때도 나는 직접 회사를 찾아간다. 인사담당자를 만나 "우리 제자 정말 착하고 일 잘하니 잘 부탁합니다" 하고 딱 90도 인사를 하면 정이 많은 한국 사람들은 "아이고 교수님 그러지 마십시오" 하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열 번이면 한 두 번은 마지못해 채용시켜준다. 5년이 흐르고 10년이 지나도 졸업생들은 항상 두 팔 벌려 대환영이다.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아온 자식을 맞이하는 아버지와 같은 심정으로 반기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민이 있다면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한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단 한 번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 소중한 내 인생을 보다 가치 있는 일에 쓰고 싶다. "世に生を得るは事をなすにあり(세상에 생을 얻은 것은 일을 하기 위함이라)", 내가 존경하는 명치유신(明治維新)의 지사(志士) 사카모토 료마(坂本 ?馬)의 좌우명이다. 대립과 갈등으로 얼룩진 과거의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인 나를 한 인간으로서 따뜻하게 받아준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위해 내가 가장 의미 있게, 가치 있게 사는 방법이 무엇일까 내 머릿속은 항상 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당신이 무슨 슈퍼맨인 줄 아쇼?" 학생을 위한답시고 쉬지도 못하고 몸을 너무 혹사시키는 게 아니냐며 오늘도 마누라는 걱정과 불만이 반반씩 섞인 목소리로 뭐라 한다. 그래, 분명 나는 슈퍼맨도 영웅도 아니다. 아니 그러니까 더 나는 내가 지금 이 시대에, 이 사회에서 맡은 바 자그마한 처소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싶은 것이다.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일편단심 내 한 몸 불살라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할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나는 기필코 한국인에게 늘 아픔을 안겨주던 과거의 일본인과 다른 새로운 일본인상(像)을 보여주고야 말겠노라고. 결국 그것이 나를 낳아준 조국 일본을 향한 애국의 길임을 언젠가는 일본사람들도 이해해 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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