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동 떨어진 우리의 삶이란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문화란 자연 조화의 여러 모습으로부터 형성되어 왔고 앞으로도 새롭게 나름대로 이어져 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한 해의 주기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로 사계절이 뚜렷하게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자연 조건 속에서 삶의 변화를 향유하고 실감나게 누리는 우리는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조상들이 말했듯이 "살기 좋은 금수강산" 말이 실감나게 피부에 와 닿는다. 아울러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우리에게는 명절이 있고, 명절에 관련된 고유한 전통의 풍습과 우리만의 문화가 있다. 오늘 날 아무리 현대화된 물결 속에서 다 변화에 대한 갈망으로 꿈을 꿀지라도, 우리의 전통 문화는 유일한 생산 수단으로 삼아 왔던 농경문화의 특유한 풍습임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오늘은 우리의 삶은 농경문화의 중심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상업주의 문화가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월 초하루와 추석이 되면 제각기 고향을 찾아가 친지들을 방문하고 조상들의 묘소에 참배를 올리려는 행렬이 이루어지는 까닭은 무엇이겠는가? 아마도 우리의 뇌리 속에는 명절은 반드시 고향이어야만 제 맛이 나고, 아울러 고향은 아무래도 시골이나 농촌이라야만 명절의 풍습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복잡하게 돌아가는 산업사회의 일원으로써 바쁘다는 그럴싸한 변명으로 삶의 방법을 달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우리 삶의 방법에 근간이 되었던 전통 그대로의 문화정신은 과연 올바르게 간직되었는지 반문해야 한다. 조상들의 묘소에 한두 번 방문하여 참배하는 것으로 마음 편할 일이 없을 것이며, 자손의 역할을 다했다고 감히 말하지 못할 것이다.

조상들이 이룩해 놓은 고귀하고 진솔한 정신적 아름다움을 우리는 이따금씩 삶의 방편에서 군더더기가 되는 양 무심하게 벗어던져 버리면서 명절 때만 되면 "민족의 대이동" 이라는 수식어 까지 읊조리며 찾는 고향이 참된 고향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조상을 참배함에 있어서 우리는 허리 굽혀 바치는 술잔으로 고향을 방문했다는 예의를 지켰다고 느낄 것이 아니라 조상님이 우리에게 무언으로 가르쳐 주신 내리 주심과 자손의 이어받음이라는 정신적 계승을 다시 한 번 마음속에 깊이 되새겨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명절 때마다 한 움큼의 흙속에서 고향의 냄새를 찾기보다는 진정한 삶의 정신적 고향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도시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실향민 아닌 실향민적인 삶을 살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고향에 갈 수 있다는 이향민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북에 고향을 두고 온 진짜 실향민보다 조상을 잊고 사는 경향이 농후하다. 따라서 정신적 고향과 조상의 정신을 깊이 간직하기 위해서 한가위에 찾는 고향에서는 정신적인 실향을 회복시켜 보는 것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배고팠던 시절에 우리 조상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외쳤던 옛말이 오늘날의 풍요로움 속에서는 어떻게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물질적 배고픔보다 정신적 배고픔을 달래야 하기에 더 더욱 한가위의 의미를 다시금 정립해야 할 것이다.



/박기태 (건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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