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안이 엉망이다. 아이는 윗목 모서리에 머리를 처박고는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노란 고무줄로 된 기저귀 끈이 끊어지고 주변에 오줌이 흥건하다. 푸른 물똥이 묻은 기저귀가 아이 발가락에 걸려있다. 나는 그 상황을 해석할 도리가 없었다. 젖만 주면 얼마라도 자는 아이라 방심하고 들판에 새참을 주러 나갔다가 들어오니 아이가 예전과 달랐다. 아이를 어르고 젖을 물렸다. 흐느끼느라 젖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를 끌어안고 눈물이 나왔다. 힘들어도 업고 다녀올 걸 그랬다는 후회 감에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엄마의 온기가 전해지는지 아이가 스르르 몸을 풀고 잠을 잔다.

그때 화초장을 바라보던 나는 경악했다. 문짝이 비슷이 열려있고 그 안에 서랍이 빠져있었다. 내 비명에 아이는 다시 깨서 발작하듯 울었고 나는 아이를 품에서 내팽긴채 맨발로 튀어 나가 큰댁으로 달렸다. 말이 나오지 않아 마당에서 콩 타작하는 형님 소매를 붙들고 집으로 내 달렸다. 도둑이 든 것이다.

지서에서 순경이 나와 조서를 꾸미느라 여러 정황에 대한 질문을 수도 없이 했다. 칭얼대는 아이를 업고 마당을 서성이며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반복했다.

저녁이 되자 소문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방 한가득 모였다. 위로해준답시고 모여들었을 것이다. 현장을 가장 먼저 목격한 나는 놀라움이 가시지 않아 사시나무 떨 듯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가시 같은 말이 들렸다. '이는 아는 사람 소행이여' 그와 동시에 시어머니의 눈과 내 눈이 마주 쳤다. 마침내 응원군을 만났다는 듯 '집안사람 소행' 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거침없이 하고도 시어머니는 분이 풀리지 않는 듯 했다.

그 시선은 오랫동안 내게 쏟아졌다. 가시처럼 내 몸을 찔렀다. 친정 살림살이가 빈한하니 그런 오해를 받는다고 생각하여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또 미워졌다. 버선목이라 뒤집어 보일 수도 없는 일, 생각날 때마다 혼잣소리처럼 하는 시어머니의 원망을 고스란히 들으며 살았다. 마음속에 천둥 같은 소리를 담고도 내뱉지 못했다. 늘 목젖이 아렸다. 겨우 숟가락으로 방문 문고리 걸고 대문은 늘 상 버젓하게 열어 놓아 단속이 안 되던 집이다. 동네 마실 꾼이 있는 자리에서도 자랑삼아 화초장 열어 놓더니 왜 나만 잡도리 하는가. 아이 돌 반지며 내 패물도 모두 거기에 있었다. 들판에서 일하다 보면 금이 닳는다고 반지를 끼지 못하게 하셔서 신혼 때 며칠 끼어보고는 그 후 한 번도 내 몸에 지녀 본 적이 없는 금붙이다.

나는 아깝지도 않았다. 그냥 신기루 같은 그것이 늘 화초장 속에 있다고 생각하면 될 터, 나는 그것을 만져볼 권한도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 것이지만 소유욕도 없었다. 그것이 없어지거나 장롱 속에 있거나 내게는 똑같다고 생각했다.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쯤에서 나에게 선물을 하고 싶어졌다. 그것도 빛나는 황금으로. 내가 예전에 내 것을 잃고도 의심받고, 아무 말도 못 했던 자신에게 이제라도 보상하듯. 금은방에 찾아갔다. 번쩍번쩍하는 금팔찌를 고르다 갑자기 어린아이가 떠올랐다. 위급한 상황을 감지하고 새파랗게 울어대던 갓난아이가 느꼈을 공포를 어찌 지금에서야 떠올리는지. 내게 닥친 바람을 막아내며 사느라 우리 아기가 그날 침입자로부터 받았을 원초적 공포를 외면하고 살았다. 그토록 무심한 나에게 황금 팔찌가 가당한 것인지 주춤하다, 계약금을 건넸다.

그 아이도 자신의 몫으로 견뎌냈을 것이다. 다행히 아들은 그날을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내 마음의 CCTV에 녹화된 그날을 가슴에서 내려놓고자, 이제 나는 화초장 깊은 곳에 있던 패물을 자신에게 바치려 한다.



/유인순 한국문인협회 천안지부장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