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엇비슷한 실력과 기반을 가지고 있으면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나 힘을 겨루고 경쟁을 벌이는 상대를 '맞수', '호적수', 요즘말로는 '라이벌'이라고 한다. 옛 중국의 삼국시대 중원에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던 위(魏) 나라의 조조(曹操)와 축(蜀) 나라의 유비(劉備)도 그렇고 19세기 중엽 유럽의 패권을 놓고 피로 피를 씻는 격전을 펼쳤던 나치스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Adolf Hitler)와 영국의 수상 처칠(Winston Churchil) 등은 진정 인류 역사가 낳은 라이벌 중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다.

역사에 대해 둘째가라면 괜히 서러운 게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한국 사람이 아닌가. 고려(高麗)를 건국한 태조 왕건(王建)과 후백제(後百濟)를 연 견훤(甄萱), 조선시대 유교 사상계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율곡 이이(李珥)와 퇴계 이황(李滉), 임진왜란 때 국가 멸망의 위기로부터 나라를 구해낸 이순신(李舜臣) 장군과 전공을 다투었던 원균(元均) 장군도 한국사를 빛낸 라이벌들이었다.

한국보다는 조금 역사가 짧긴 하지만 일본에도 기라성과 같은 여러 라이벌들이 각 시대를 수놓아 왔다. 그 중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대표주자로 꼽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듯싶다. 15세기~16세기에 걸쳐 무려 100년 넘게 계속되던 전국시대를 수습하고, 천하를 호령하기 위해 사투를 되풀이했던 이 두 사람은 누가 뭐래도 일본 역사를 대표하는 라이벌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대로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는 16세기 후반 일찍이 천하통일에 나선 희대의 풍운아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 휘하의 장수였는데, 태생이 매우 미천한 신분 출신인데다가 외모도 원숭이를 닮았다고 해서 '사루(猿)'라는 별명이 붙여질 정도의 추남이었다. 통일사업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오다가 부하에게 암살당하자 도요토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다의 후계자로서 바로 천하를 다스리는 패자 '텡카비또(天下人)'의 자리에 올랐다.

한편 도쿠가와는 원래 오다의 동맹자로 신분만 따진다면 도요토미보다 훨씬 높은 가문의 출신이었다. 두 사람의 불꽃 튀는 경쟁은 임진왜란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도요토미가 그 후 급격하게 세력을 잃고 끝내 패망의 길을 걸었던 데 비해 숱한 역경을 딛고 흩어졌던 민심을 수습하는 데 성공한 도쿠가와가 1603년 장군으로 추대되면서 마무리된다. 지금의 도쿄(東京)인 '에도(江?)'에 막부(幕府)를 연 도쿠가와가 마침내 천하를 통일하고, 히데요시의 사후 그의 아들 히데요리(秀?)가 농성하던 오사카성(大阪城)이 1615년에 함락하면서 두 영웅의 대서사시는 피날레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흘러 비록 도요토미도 도쿠가와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도요토미가 건설한 오사카(인구 약 890만 명)와 도쿠가와가 만든 도쿄(약 1,320만 명)는 지금도 각각 서일본과 동일본을 대표하는 대도시로서 문화, 경제, 학문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좋은 의미에서 서로 경쟁하는 라이벌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11년 3월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지진과 쓰나미(津波), 그리고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유출문제로 수도 도쿄의 배후지인 동일본 지역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때도 오사카를 중심한 서일본 지역이 굳건히 버티어 주었기 때문에 일본은 최악의 상황을 회피할 수가 있었다. 이처럼 도쿄와 오사카는 마치 자전거의 앞뒤 두 바퀴, 비행기의 좌우 양쪽 날개와 같이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 것이다.

라이벌, 만만치 않은 실력으로 평소에 나를 긴장시키고, 까다롭고 귀찮기 그지없는 상대도 알고 보면 그 누구보다도 나의 능력을 인정해 주고, 걸핏하면 무사안일에 젖어 나태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나를 질타하며 끊임없는 노력과 발전의 길로 이끌어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 현해탄을 끼고 증오와 몰이해의 역사를 되풀이해 온 이 두 나라가 하루빨리 역사에 대해 철저한 검증과 평가를 마치고, 과오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손해배상의 절차를 밟은 다음에 서로 대등한 파트너로 거듭나 서로의 입장과 실력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동아시아를, 아니 더 나아가 세계를 리드하는 진정한 라이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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