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자들이 말하기를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마지막으로 남아있을 식물은 난(蘭)이라 한다.

난은 그만큼 지구 환경변화에 잘 대응하면서 적도부터 북극까지 폭 넓게 분포돼 있으며 햇볕과 바람, 수분함량에 따라 땅 속, 바위 틈, 나무 위에 이르기까지 서식한다.

이 같은 자생력의 근원은 주위 환경에 적응하면서 끊임없이 변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분이 부족하면 공기 중의 수분을 모으기 위해 뿌리를 계속 키워나가고, 일시에 많은 수분을 저장했다가 서서히 공급한다. 줄기는 영양분을 저장하고, 잎은 햇볕과 태양열의 정도에 따라 영양공급의 강약 조절을 위해 면적을 줄이거나 늘리기도 한다.또 엽록소 양을 조절해 잎의 무늬가 녹색바탕에 백색이나 노란색 심지어 붉은 색 테두리나 반점 모양을 갖추기도 한다. 많은 난 애호가들은 이러한 변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는다.

새로운 변이종이 발견될 때마다 열광하고 소장하고 싶어하며 희귀성에 따라 높은 가격으로 유통돼 매스컴에 회자되기도 한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일찍이 매·난·국·죽을 사군자로 부르며 난은 매화에 이어 두 번째로 기개와 기품이 있는 식물로 평가했다.

군자들이 묵화로 즐겨 난을 치고 친구로부터 한 뿌리 얻어 배양함을 삶의 큰 기쁨으로 여겼으며, 여의치 않으면 묵란도를 걸어두고 즐겨하였음은 많은 고전 시화로 미뤄 알 수 있다.

난향천리(蘭香千里)라 하였던가?

난의 향기가 천 리를 갈 리야 없겠지만 그만큼 은은하면서도 오래 유지되기에 생긴 말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한 꽃대에서 한 꽃송이가 봄에 피는 춘란(春蘭)과 여러 개의 꽃송이가 가을에 피는 한란(寒蘭)이 자생한다.

한란은 춘란에 비해 향이 짙고 예부터 서화도에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근년에는 서양으로 건너가 개량된 심비디움이 대량 보급되고, 중국남방계 난이나 대만·태국 등지의 자생란이 상업적으로 수입 판매되고 있다.

이런 난은 수입 후 제대로 적응기간을 거치지 않고 병충해도 검증되지 않은 채 곧바로 유통되는 현실이다.

어떤 토양에 어떤 조건으로 재배됐는지 충분히 검토하고 이에 걸맞는 경과과정을 거쳐 검증된 난을 판매해야, 소비자들이 이를 구매해도 배양이 쉽고 실패할 확률이 낮아질 것이다.

요즘 승진이나 개업 등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난을 최고의 선물로 선택한다.

그러나 많은 난은 시간이 지나면 유감스럽게도 하나 둘씩 죽어간다.

평소 난을 즐겨 배양하고 애호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현상에 대해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병든 난을 집으로 가져가 응급처치와 재활치료를 거쳐 되살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치료를 위해 화분을 갈려고 난석을 쏟아내는 순간 울화통이 치미는 때가 있다.

난석은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종류와 크기에 따라 화분 아래부터 배수와 통풍을 고려해 규칙적이고 질서정연하게 배열돼야 한다.

그러나 무질서하게 배열돼 있거나 아예 작은 난석 한 종류만으로 채워져 뿌리가 질식 상태에 있기도 하고, 난석을 깨끗이 씻지 않고 바로 식재해 분진이 뿌리를 오염시키기도 한다. 이 정도는 아주 점잖은 편이다. 어떤 화분에는 아예 나무토막, 소나무 껍질, 스티로폼, 플라스틱 조각, 돌멩이 등 뿌리가 제대로 성장할 수 없는 쓰레기 파편들이 아름다운 난분 속을 장식하고 있는 현실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모든 난가게가 다 그렇지야 않겠지만 이런 일은 온라인 판매망이 확대되면서 더 심각해지는 것 같다.

아름다운 마음을 전파해야 할, 꽃을 파는 분들이 군자의 기품을 갖춘 난으로 축하의 마음을 어지럽게 해서야 되겠는가?



/김언현 건국대 글로컬캠퍼스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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