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는 세상은 수많은 제도를 간직하게 마련이다. 갖가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를 잘 이끌어가려고 그러한 제도들이 생겨난다. 인간과 제도와의 관계에서 다스림(治)이라는 문제가 대두된다. 그 문제는 다시 다스리는 쪽과 다스려지는 쪽으로 나누어 놓는다. 그리고 다스림은 이 두 쪽의 관계를 잘 맺느냐 못 맺느냐에 따라 다스림이 잘될 수도 있고 잘못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진 사람이 다스리면 잘되지만 어질지 못한 사람이 다스리게 되면 다스림이 잘못되는 것이다.

정치는 어진 사람(仁者)이 해야 한다. 왜 인자(仁者)가 정치를 해야 하는가? 남보다 먼저 앞서서 일을 하고 백성을 아까워하면서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인자인 까닭이다. 목에 힘을 주고 백성을 없이 여기는 자가 다스림의 자리에 있으면 한 손에 매를 들고 한 손에 고삐를 들고 백성을 소처럼 부려먹기만 하려고 덤빈다. 백성이 관(官)을 무서워하면 세상일 잘될 리가 없다. 관청의 문턱이 높아 일반 사람들은 관가를 무서워하면 그 관가의 장이 힘으로 군림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원님이 어질지 못하면 아전들은 망나니 춤을 추는 것이고 백성은 곯아야 한다. 이렇게 어질지 못한 사람이 권력을 쥐면 썩은 고깃덩이에 붙은 개미떼처럼 간신들이 제철을 맞는다.

어진 사람은 현명한 사람을 찾아 쓴다. 현명한 사람은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하므로 못할 짓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명한 사람은 일에 따라 맞는 인재를 골라 쓸 줄 안다. 그래서 사람의 과실을 빌미로 삼아 모질게 대하기보다는 용서를 하면서 더욱 분발하게 하는 넓은 마음을 간직한다. 현명한 사람은 사람을 알아볼 줄을 안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이 정치를 하게 되면 부정부패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등치는 것이 가장 독(毒)한 악(惡)임을 현명한 사람은 알기 때문이다. 어진 사람 옆에 가까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그러므로 어진 사람의 밑에서 일을 돕는 사람은 마음이 기쁘고 즐겁다. 그러나 엄한 것만을 앞세우는 사람 옆에 있으면 찬바람이 난다. 마음이 안 놓여 조마조마할 뿐 편한 순간이 없다. 겁이 나서 일하는 것과 기쁘게 일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능률이 오를 까는 물을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엄한 자는 겁을 주어 사람을 부리려고 한다. 윗사람 비위나 맞추면서 일을 하는 척만 하면 된다고 관리들이 생각하는 풍토는 그 윗사람들이 다스릴 여력이 없는 까닭에 그런 바람이 분다. 인자(仁者)의 덕(德)은 산들바람과 같다. 백성의 덕은 풀과 같다. 다스리는 사람이 덕풍(德風)을 불면 멀리 있는 백성들은 따라 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군림하는 치자는 폭풍만 불게 한다.

그러면 풀잎들은 꺾이고 상처를 입는다. 이제 폭군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높은 벼슬에 앉아 있으면 힘을 빌려서 무슨 공적을 남기려고 수를 부리고 재주를 떠는 관리들이 많다. 장관의 성질에 따라 정책이 바뀌는 꼴을 우리는 수시로 본다. 다스리는 자가 이랬다저랬다 하면 나라는 흔들리게 되고 백성들은 땅위에 살면서도 배 멀미를 앓아야 한다. 이것처럼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그러한 멀미 때문에 여전히 밤새 안녕하냐고 우리는 인사를 나눈다. 욕심 많은 치자(治者)가 생기면 권력층 비리가 난무하고 이익을 얻는 쪽은 아군이 되고 피해를 입는 쪽은 적군이 되어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나날이 싸움질만 하게 된다.

두 마리의 개가 고깃덩이를 물고 서로 많이 먹겠다고 으르렁대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치자(治者)가 이익을 탐하면 권력은 천하의 상권이 되어 하룻밤 사이에 재벌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오만에 사로잡힌다. 부산에서 재벌 노릇을 했던 양모 씨는 그러한 오만을 몰라주다가 하루사이에 재산을 몽땅 잃은 적이 있다고 수군대던 때가 있었다. 정치가 장사 노릇을 하면 모든 은행의 금고 열쇠는 한 사람의 손에 있게 된다. 왜 이렇게 되는가? 작은 이득을 탐하기 바빠 나라가 멍든다는 것을 몰라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치자(治者)가 이득을 탐하면 큰일을 망친다고 했다. 큰일은 곧 백성을 편하게 하도록 세상을 다스리는 일이다. 그러한 일을 인자(仁者)가 해야 생선가게의 고양이를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TV 뉴스나 신문을 보면 치자(治者)인지 고양이 인지 참으로 분별이 되지 않는다. 울화가 치민다. 12월은 치자(治者)를 뽑는 달이다. 백성을 가까이 할 줄 아는 인자(仁者)를 뽑아야 한다. 이것이 오직 우리의 소망이다.



/윤한솔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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