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포럼>김희정 중부대학교 인테리어학과 교수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이제 당시 생활상과 비교하는 것조차 아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루었다.

몇 년전 한 이동통신사가 tv를 통해 방송했던 광고를 떠올려 보자. 북한에 있는 할머니가 남한에 있는 할머니와 전화로 서로의 모습을 보며 통화를 하면서 두 할머니 모두 그리움에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이 있다.

이 광고는 첨단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도 추억과 향수, 그리움 등 아날로그적인 정서에 대한 열망은 여전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전화는 1876년 미국의 그레이엄 벨이 특허로 등록한지 이제 갓 130여년의 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그레이엄 벨이 이 사실을 알면 무덤에서 박차고 나올 정도로 기술의 발전은 끝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화상전화로 서로의 얼굴을 보며 통화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비단 전화에만 문명의 발전이 해당되지 만은 않을 것이다. 문화, 생활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급하게 변해가고 발전해 가는 것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요즘에는 '느리게 살기' 즉 'down shift'가 또 다른 생활문화의 트렌드가 됐다.

다운시프트는 원래 자동차를 '저속 기어로 바꾼다'는 뜻이다.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유럽의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빡빡한 근무 시간과 고소득보다는 비록 저소득일지라도 자신의 마음에 맞는 일을 느긋하게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부터 등장하였다.

또 다른 트렌드는 '디지털 컨버젼스' 일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주된 기능을 가진 하나의 제품에 여러가지 복합기능을 넣어 만들어는 내는 것이며 근래 휴대전화가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요즘 핸드폰은 통화라는 기본적인 기능 이외에 mp3, 디지털 카메라, 모바일뱅크 등 복잡다양한 기능들을 그 작은 핸드폰 하나에 다 집어 넣고 이용자들이 써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 많은 기능들을 일일이 다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가방을 한번 열어보자 이 다양한 기능을 가진 핸드폰이 있음에도 mp3 플레이어와 디지털 카메라가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이런 제품들의 설명서는 어떠한가. 선듯 읽어보기가 망설여질, 정말 왠만한 단행본은 울고갈 정도로 두터운 설명서에는 이 제품에 담겨있는 수많은 첨단 기능들을 나열하며 사용자들에게 이 기능들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친절히 설명하고 있지만 그 기능들을 모두 사용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기도 하다.

다른 하나의 트렌드는 '디지로그(digilog)'이다. 디지털(digital)과 아날로그(analog)의 이름을 딴 합성어인 디지로그는 디지털에 아날로그적 정서를 더해 머리가 아닌 마음에 호소하는 것이다.

cd나 mp3 보다는 해적판을 구하기 위해 청계천을 뒤져 어렵게 구한 lp판을 턴테이블 위에 올려 놓으면 지지직 거리던 잡음이 나도 좋았던 그 때가 그립고 찍고 바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 보다는 필름을 사서 찍을 때마다 와인딩해 현상소에 맡긴 다음 현상이 끝날 때까지 어떻게 사진이 나올지 가슴을 졸이며 기다렸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곤 한다.

이렇듯 최첨단의 무엇인가가 나올 때 마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제 아날로그인 그 무엇은 종말을 맞았다고 호들갑을 떨고는 했다. 하지만 그 명맥은 끊이지 않고 사람들 곁에 남아 향수를 자극하고 그 시절을 돌이켜 볼 여유를 찾게 만들어 준다.

다음달이 오면 벌써 한해를 정리해야 할 연말이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 연말이 다가옴에도 한해를 정리할 엄두가 쉽게 나지 않는다.

케케 묵은 lp판을 꺼내들어 틀어놓고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올 한해 지나간 사람들과 시간들을 생각해보고 이메일이 아닌 편지를 써 보려고 한다. 한편으로는 너무 구닥다리 같고 느리게 보일까봐 걱정이 되도 말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