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들은 잡히기만 하면 감옥으로 간다. 그래서 감옥은 이런 도둑, 저런 도둑들이 모이게 마련이다. 도둑도 사람이므로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왜 들어왔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감옥 안에서는 도둑들의 집회가 열리게 마련이다.

도둑들의 집회에서는 큰 도둑이 윗자리에 앉고 좀도둑은 아랫자리에 앉는다. 상좌에 앉은 한 도둑이 좌중을 향해 다음과 같이 큰 소리로 외쳤다. “잘난 도둑은 감옥 안에 있지만 못난 도둑은 감옥 밖에 있는 법이다. 뇌물을 받는 놈도 도둑이고 뇌물을 바치는 놈도 도둑이다. 급행료를 받고 일을 봐주는 관리도 도둑놈이고 턱 없이 돈을 받고 송사를 맡아 주는 변호사도 도둑놈이며 없는 병을 있다고 속여서 치료비를 후리는 의사도 도둑놈이다. 이런 도둑들은 날도둑인데 잡히지도 않고 걸려들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놈들은 숨어서 도적질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내놓고 도둑질을 하다 재수가 없어서 감방 생활을 할 뿐이다. 다들 도둑질로 한 몫 보려는 세상에서 차라리 내놓고 도둑이 되었다가 붙들려 감옥에 왔다고 부끄러울 것은 없다. 다만 억울하고 분할 뿐이다.” 이렇게 큰 도둑이 일갈하자 다른 도둑들이 옳소 하면서 박수를 쳤다. 이처럼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것처럼 도둑의 눈에는 온 세상이 도둑으로만 보인다.

덤을 노리는 것도 도둑이요, 턱 없이 욕심을 부리는 것 또한 도둑이다.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하면 탐욕을 부리게 되고, 탐욕은 옳지 못한 방법으로 욕심을 채우려고 덤빈다. 그래서 억지를 쓰게 되는 것이다. 압력으로 돈을 빼앗아도 도둑이고 서로 죽이 맞아 뇌물을 주고받아도 도둑이다. 남의 집 담을 야밤에 넘어 들어가 강도짓을 하거나 남의 호주머니에 든 지갑을 터는 소매치기만 도둑인 것은 아니다. 옳지 못한 짓으로 탐욕을 부리면 다 도둑인 것이다.

요즘은 세상이 어지러워서인지 간 큰 도둑들이 늘고 있다. 성폭행인 것이다. 폭력으로 남의 귀중한 성을 빼앗으니 간 큰 도둑놈이 아닌가. 어디 그뿐인가. 성만 도둑질하는 것이 모자라 목숨까지 도둑질하여 암매장까지 하니 도둑놈 치고는 참으로 간 큰 도둑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의 현실사회가 이러한데 나라를 세상을 다스린다는 정치꾼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료들은 어찌하고 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못해 화가 난다. 허기사 자기네들의 제몫 챙기는 도적질에 혈안이 되어 있으니 어찌 보면 그 도둑이 그 도둑이 아니겠는가! 그저 욕심만 다른 도둑일 뿐이다.

한때 서울의 남산에는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박통치하에서 중앙정보부라면 가장 무서운 기관이었다. 영장도 없이 사람을 잡아다 겁을 주기도 했고 심하게는 구타를 하거나 갖은 고문을 자행하여 눈에 나기만 하면 혼내준다는 기세를 도맡아 치르던 기관이었다. 어느 때나 독재자는 불안을 느끼므로 살기등등한 기관을 두게 마려이다. 그러한 중앙정보부의 서울 분실이 남산골에 터를 잡고 있었다. 권부의 눈 밖에 나서 그곳으로 끌려가 치도곤을 당하고 나온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남산 맛을 보겠느냐는 조롱조의 비어가 난무했었다.

박통시절 남산 분실에 끌려갔다 하면 지독하게 고문을 당했거나 수모를 당해야 했으니 그런 말도 바람처럼 떠돌아 다녔다. 가장 못난 정치가 정보정치고 정보정치는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만 시키는 대로 말만 잘 듣고 고분고분하면 편안하게 배불리 내버려둔다는 단서를 달고 권력을 양날 칼 인양 휘둘러대는 것이 정보정치의 공포이다. 공포정치는 백성을 주눅 들게 하고 모두를 서로 의심하게 한다. 독재는 백성을 믿는 것이 아니라 모반할 것이란 의심을 하고서 다스림을 주름잡아 보려는 야심의 분출인 까닭이다. 마음을 비우지 않는 한 잘난 도둑, 못난 도둑은 늘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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