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점 파편 수습 630여자 확인

대지국사(大智國師) 법경(法鏡)이란 사람은 조선초기에 고려 500년 정사로 기획되고 완성된 편년체 역사서 '고려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법상종(法相宗)파 승려로 왕사(王師)에 이어 국사(國師)에 오른 고려전기 불교계 거물이다.

▲ 서울역사박물관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 1-1번지 일원 삼천사지(三千寺址) 탑비구역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고려전기 승려인 대지국사(大智國師) 법경(法鏡)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는 명문비편(銘文碑片) 등 10∼13세기 고려시대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고 지난 5일 밝혔다. 사진은 삼천사지 탑비구역 출토 석조보살두(왼쪽), 명문비편 .


그는 고려 현종시대(1009-1031) 수도 개성에 법상종 종찰인 현화사(玄化寺)의 초대 주지로 활동하면서 당시 불교교단에 법상종이 화려하게 등장하는 초석을 닦은 인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의 구체적인 생애와 활동을 입증해 줄 거의 유일한 자료로 평가되는 그의 비문이 파손되어 산산조각 나는 바람에 법경에 대한 연구는 돌파구를 마련하기힘들었다.

최근 들어 이런 상황이 일변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이 경기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산 1-1번지 일원에 소재하는 삼천사(三川寺) 터를 발굴조사하면서 그의 비문 파편을적지 않게 수습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현화사 주지를 역임한 대지국사는 삼천사 주지 또한 지냈으며, 이런 인연으로 이곳에 그의 탑비가 건립되었던 것이다. 삼천사는 전하는 말로는 신라시대 원효가 창건했다고 한다.

박물관은 이번 조사에서 비문 파편 255점을 찾아냈다. 이 중 글자를 새긴 비양편(碑陽片)이 91점, 글자가 없는 면 조각인 비음편(碑陰片)이 32점, 기타 음양을 구별할 수 없는 조각이 132점이었다.

이 파편들에서 지금까지 확인 가능한 글자는 총 630여자. 대부분 도끼로 찍어내고 다시 그것을 잘게 부순 듯, 비편마다 확인되는 글자는 몇 글자 남짓하나 개중 어떤 비편에서는 수십 글자가 확인되는 경우도 있다.

단절된 구절이 대부분이라 비문 전체 판독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으나, 성과 또한 적지 않다.

예컨대 비편 중 하나에서는 이령간(李齡幹)이란 인명이 확인됐다. 이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삼천사를 소개하면서 기록한 "고려시대 이령간(李靈幹)이 지은 비명이 있다"는 구절의 이령간과 같은 인물이다. 나아가 이령간이란 인명이 들어간 바로옆줄에서는 최홍검(崔弘儉)이란 인명도 나타난다.

조사단은 "비문 찬자 바로 뒤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최홍검은 비문을 직접 새긴 인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나아가 수습된 다른 비편에서는 법경대사 출신지와 나이도 드러난다. 이에 의하면 법경은 죽을 때 승랍(僧臘) 85세, 세속 92세였다.

아울러 '중희 10'(中熙十)이라는 연대를 포함한 비편도 나옴으로써 만약 이것이탑비를 건립한 연대로 본다면 대지국사 탑비는 고려 정종(靖宗) 7년(1041)에 세워진셈이 된다.

대지국사 탑비가 언제 훼손됐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그런 가운데 조선후기 이후 그 파편이 더러 수습되어 소개되기도 했다. 예컨대 유희해(劉喜海)가 편찬한 금석자료집인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에는 비양편과 비음편이 각각 8점씩 수록됐다.

1960년대 이후에는 최순우 당시 국립박물관장과 황수영 박사 등에 의해 추가 수습이 이뤄지기도 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일단 "비문 파편을 힘이 닿는 한 모두 모은다"는 방침 아래 조각 하나라도 수습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렇게 모은 비문 파편들에는 이제 '퍼즐 게임'이 기다리고 있다. 수 백 점에 이르는 조각들을 문맥이 통하도록 이어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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