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 많고 약은 한 농부가 두매에 살았다. 두 섬지기 논을 머슴 없이는 지을 수가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머슴에게 주어야 할 새경이 아까워 꾀를 내서 자기 딸에게 마음을 두고 있던 한 소년과 삼년동안 새경 없이 머슴살이를 하면 딸을 주겠다고 약조를 했다.

그 소년은 열일곱살이었고 농부의 딸은 열다섯 살이었다. 소년은 열심히 그리고 아무말없이 삼년동안 일을 했다. 자기가 마음을 둔 처녀가 지어주는 밥을 먹으면서 일하는 것이 더 없이 행복했다. 이미 처녀도 일을 잘하고 믿음직한 사내에게 마음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욕심 많은 농부는 오로지 논에서 나는 곡식만을 생각했고 곡식을 팔아서 장궤에 넣어둘 엽전만을 생각했다. 삼년이 지나자 소년은 스무살 청년이 되었고 처녀는 방년 십팔세가 되었지만 그 농부는 다시 꾀를 냈다. 그래서 딸애가 아직 어려 시집을 보내기가 어려우니 다시 삼년을 새경 없이 머슴살이를 하자고 했다. 수더분한 그 젊은 사내는 못내 받아들였다.

딸은 아버지가 야속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비는 엽전의 수량을 늘리기만 생각했고 딸은 사내의 가슴에 안겨지기만을 생각했다. 다시 3년을 기다려야 한다니 딸은 속으로 욕심 많은 아비를 원망했다. 아비의 밥상보다 머슴의 밥상을 더 정성들여 차리기로 딸은 앙심을 품었다. 달라지는 밥상의 찬들을 보고 젊은이가 놀라기 시작했다. 주인밥상에 오를 찬이 머슴 상으로 왔다고 여긴 젊은이는 밥과 국만을 먹은 다음 그대로 상을 부엌으로 들고가 아무말 없이 처녀에게 상을 물려주곤 하였다. 그렇게 몇 날이 지나자 처녀가 참지 못해 왜 밥상의 찬을 들지 않느냐고 사내에게 물었다. 그러자 사내는 다정한 목소리로 이렇게 타일렀다. 주인장이 먹을 찬을 머슴이 먹으면 명분을 잃는 것이요.

당신과 내가 부부될 날을 기다리면서 열심히 일할 뿐이요. 약속을 지키지 않는 당신의 아버지를 나는 원망할 수가 없소. 당신의 아버지는 내 장인이 될 분이요. 처부모도 부모인데 어찌 내가 부모를 원망한단 말이오. 그래서 다시 믿고 머슴살이를 하는 중이요. 그러니 거기는 아버지의 밥상을 정성들여 차리고 내 밥상은 머슴 상으로 차려야 명분에 맞는 것이오. 다시 삼년을 참고 열심히 일하면 당신 아버지께서도 두 번한 약속을 어기지는 않을 것이오. 이 말을 들은 처녀는 사내의 가슴에 안겼다.

안겨오는 처녀를 따듯하게 안아준 다음 소에게 쇠죽을 주어야 할 짬이라면서 부엌일을 마저 하라고 타일렀다. 약은 아비가 숨어서 이 광경을 엿들었다. 아비는 그날 밤 뜬눈으로 밤을 세웠다. 딸이 아침 밥상을 들고 들어오자 아비는 모른척하고 밥상을 보았다. 옛날의 밥상으로 돌아왔음을 보고 딸아이를 밥상 옆에 앉으라 한 다음 열흘 뒤에 혼례를 치를 작정이니 이제 머슴 밥상을 차리지 말고 겸상으로 차려서 사위될 놈하고 같이 먹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하룻밤 사이에 군자가 생겨난 셈이다. 말을 했으면 그대로 지키는 것에서 군자가 생겨남을 보여 준다.

정명(正名)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정명이란 무엇인가? 참말이면 하고 그 참말대로 실천하는 것이며 무슨 일이 있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으며 설혹 거짓말을 했다면 그것을 뉘우치고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고 참말을 하게 되면 이 또한 정명(正名)일게다. 약은꾀로 거짓말을 했던 농부는 정명이 무엇인가를 밤새 터득했던 셈이다. 의젓해진 아버지를 놀랍게 바라보고 있다가 얼굴이 붉어진 딸은 그 말을 듣고 쇠죽을 끓이고 있던 머슴에게 달려가 어젯밤처럼 다시 안겼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머슴들이 모여서 밤일을 하는 사랑방에서 자주 구술되던 옛이야기다. 주인은 명분을 잃어 부끄러움을 알았고 머슴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 곧 명분임을 보여준 셈이다. 명분이 따로 있고 실리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거짓말이 생겨나는 법이다. 옳지 않은 것이면 말을 하지 않고 옳은 것이면 반드시 말을 하고 말을 했으면 말한 대로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것이 정명(正名)이다.

치자(治者)는 무엇보다 정명해야 한다. 치자라면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치자가 거짓말을 일삼으면 결국 나라의 모든 문물이 흔들려 백성은 발붙일 곳을 잃게 되는 것이다. 지금 공약을 밥 먹듯이 한 다음 공약(空約)이 되게 해놓고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치자(治者)들이 너무나 많다.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거짓말투성이의 정치가 오늘에 현실이다. 거짓말을 일삼는 치자는 약조를 어긴 것을 부끄러워하고 딸을 준 그 농부만도 못하다. 12월 19일은 우리의 치자를 뽑는 날이다. 부디 명분과 정명을 아는 분이 뽑히기를 기대할 뿐이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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