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2개월 돌고 돌아 마침내 '한몸'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간 12일 합당선언은 본격 협상이 시작된 후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을 만큼 초고속으로 진행됐다.

작년말 신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에서 정계개편 논의가 촉발된 이후 최대 현안이었던 민주당과의 합당문제가 1년 가까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지루한 교착상태를 보여오다 대선에 임박해서야 속전속결식으로 마무리가 된 것.

열린우리당 창당세력이 2003년 9월20일 교섭단체로 등록했고, 11월11일 창당식을 가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당이 고착화된지 꼭 4년2개월 만에 다시 옛 민주당 사람들이 다시 한 배를 타게 된 것이다.

양당의 전격적인 합당선언은 무엇보다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이어서 더이상 통합 논의를 미룰 수 없다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신당 정동영 후보 입장에서는 후보 지명 이후 한달 가까이 지났지만 지지율이 10% 초중반 대에 머무는 등 반등의 계기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전통적 지지층 복원을 위해서라도 민주당과의 합당은 외길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 역시 이인제 후보가 대선후보로 선출됐지만 지지율이 1~2%대에 머물고 있어 민주당의 틀을 고수할 경우 대선은 고사하고 내년 총선에서 생존기반마저 지켜낼 수 없다는 우려감이 고조됐던 게 사실이다.

다만 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종전부터 11월 후보단일화 구상을 밝혀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양당 모두 후보등록일(11월25~26일) 이전에 대선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않겠느냐는 예상은 있었지만 통합문제로 1년 가까이 줄다리기를 해온 양당이 합당선언까지 나간 것은 다소 의외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이는 신당에서 파격적 제안을 한데 따른 것으로, 박상천 대표와 신당 김한길 의원의 지난 7일 만찬회동이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정 후보로부터 상당한 권한을 위임받은 김 의원은 이날 `일대일 당대당 통합'과 합당한 정당의 명칭을 통합민주당으로 할 것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당초 세력간 통합까지 나아가는데 부정적이던 박 대표는 민주당 관계자들에게 김 의원의 이런 제안을 설명하면서 두루 의견을 경청했고 합당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는 것이 민주당측 설명이다.

물론 박 대표와 김 의원의 회동이 성사된 데는 신당 내 김원기 전 국회의장, 정대철 선대위 고문, 강봉균 의원 등이 민주당 주요인사들을 만나 사전 물밑접촉에 나선 것도 주효했다는 후문이다.

박 대표는 정 후보가 후보로 당선된 지난달 15일 이후 수차례 회동 요청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했는데 신당의 원로들을 통해 신당의 전향적 입장을 전해듣고 김 의원과 회동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인제 후보는 9일 대구에서 지역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신당이 민주당의 당명을 쓰고 중도개혁노선에 복귀하는 것을 전제로 후보단일화와 통합을 동시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는 신당의 제안에 대한 긍정적 화답이었고, 박 대표와의 사전 협의를 통해 조율된 발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저녁부터 신당과 민주당측은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신당에서는 이용희 국회부의장과 김한길 의원이 주도했고, 민주당에서는 박 대표가 직접 나섰다. 고성이 오갈 정도로 치열한 신경전도 벌어졌다고 한다.

민주당은 일대일 당대당 통합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통합정당의 첫번째 전당대회를 내년 총선 후에 개최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할 것을 주장했다.

신당이 현재 당헌에 명시된 대로 내년 1월 전당대회를 개최해 신당측에서 당권을 장악할 경우 총선 공천문제가 불거질 때 민주당이 밀릴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한 것이다. 이 부분은 결국 `통합정당의 첫번째 전당대회를 총선 직후인 내년 6월에 개최한다'는 내용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민주당은 중도개혁주의 노선으로의 `복귀'라는 부분도 분명히 해줄 것을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민주당에서 분당한 열린우리당, 그 후신인 대통합민주신당이 민주당의 정체성이었던 중도개혁주의에서 이탈했다가 되돌아왔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였지만, 이 쟁점은 중도개혁주의 채택이라는 선에서 절충점을 찾았다.

또 민주당은 통합의 방식으로 적어도 3차례 이상 tv토론 후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후보를 결정하자는 입장을 피력한 반면, 신당은 tv토론은 한차례만 실시하자고 맞섰다.

양당은 10일 밤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합의에 이르렀고, 11일 오전 정동영 후보, 오후 박상천 대표가 각각 기자회견을 열어 정 후보가 통합과 후보단일화를 제안하면 박 대표가 수용하는 형태를 취한 뒤 12일 4자회동을 통해 최종 사인한다는 일정까지 조율했다.

하지만 11일 정 후보의 기자회견이 이뤄진 후 갑자기 박 대표가 기자회견을 취소하고 유종필 대변인이 반응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바람에 다소간 마찰을 빚기도 했다. 박 대표는 정 후보가 그간 협상내용을 함축적으로 담은 상당히 진전된 발언을 기대했는데 그 수준에 못미쳤다는 것이다.

결국 박 대표와 신당측 고위 관계자가 이날 오후 다시 조율과정을 거쳤고 오후 6시께 "12일 오전 9시 4자회동을 실시한다"는 양당 대변인의 발표가 있고서야 상황은 정리됐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