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31일 한 해의 끝자락에 안동에 다녀왔다. 먼저 도산서원에 갔는데, 안동시에 들어가면 나올 줄 알았는데 시내를 관통해 35번 국도를 타고 한참 지난 곳에 있었다.

원래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께서 직접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도산서당과 제자들이 기숙하며 공부하던 농운정사만 있었는데, 퇴계 선생 사후에 제자들이 그 뒤로 높게 언덕을 따라 건물들을 지었다. 또 원래는 서원 앞에 평지가 훨씬 더 멀리까지 펼쳐지고 그 앞에 강이 휘돌아나갔는데, 안동댐으로 수면이 높아져 강이 서원 바로 앞으로 흐르게 되어 지금의 서원 풍경은 선생 당시의 모습과 사뭇 많이 달라졌다. 높지 않은 산언덕 위까지 건물들이 들어선 지금의 서원이 웅장해보일지 모르지만, 가거지지(可居之地)로 좋은 아늑한 언덕자락에 소박한 서당을 짓고 강호지락을 추구했던 선생의 취지를 생각해본다면 인간이 작위로 자연의 품을 내쳐버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번 안동 여행 동안 농암 종택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예전에도 농암 종택과 군자마을에서 묵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그 고택들이 원래 거기 있었는지 알았다. 이번에 군자마을도 농암 종택도 안동댐으로 수몰된 지역에 있었던 건물들을 해체해서 물에 잠기지 않은 새로운 터전에 복원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농암 이현보 선생은 수몰된 도산의 강호를 노래하며 '어부가'를 남겼다. 퇴계 선생 또한 도산 9곡의 자연을 음미하며 '도산12곡'을 썼다. '어부가'나 '도산12곡'의 배경이 되는 도산 지역의 굽이굽이 강줄기들은 그 일부만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안동호 속에 수몰되었지만, 이 지역의 옛 그림을 보면 굽이굽이 강줄기가 휘감아나가는 곳에 오순도순 촌락을 이루고 있다. 만약 도산지역의 자연과 촌락이 어우러진 풍광의 문화적 가치를 조금만 더 볼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안동댐을 짓지 않거나 댐의 수위를 조금만 더 낮춰 도산9곡을 지켜주었더라면 어쩌면 하회촌(河回村)이 안동과 도산에 군락을 이루며 세계 유산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안동호에 수장될 뻔했던 한 선조들이 세워놓은 귀한 유산을 그 후손들과 수많은 손길이 힘을 합쳐 복원시키고 지키고자 혼신의 노력을 했다는 점이다. 유적의 일부이지만 그 온전한 면모와 그 속에 깃든 정신을 우리가 지금도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들 문화유산을 지키고자 애쓴 이들의 공적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우리 고유의 건축들과 강호의 풍류가 깃든 정신적 유산 때문에 이들을 낳은 도산의 자연이 단순한 자연을 넘어 문화적·예술적 원류로서의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도산의 강호가 낳은 시와 그림, 건축들의 풍취가 우리 마음 속에 이제는 잠겨버린 강호의 풍광을 새록새록 되살려준다는 것이다.



/황혜영 서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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