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도 없이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눈물 뿐만이 아니다. 콧물도 덩달아 주르륵 흐른다. 손수건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긴급 사태다. 마른 하늘에서 소나기가 퍼붓듯 구멍에서 물이 쏟아졌다. 불과 한 시간 만에 중환자가 된 기분이다. 하필이면 그때 귀한 손님이 방문했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재채기까지 기승을 부렸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교통사고가 난 듯, 방어할 틈도 없이 온몸을 덮친 증상으로 머리가 띵하니 조여 왔다. 서둘러 이야기를 중단하고 일터를 빠져나왔다.

혹시 감기 바이러스가 직원들에게 전염이라도 될까 봐 입과 코를 봉하고 후다닥 뛰쳐나왔다. 어쨌든 사람을 피해서 쉬어야 할 터인데 냉기가 가득할 집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대체요법 센터를 운영하는 원장님께 갔다. 마사지 침대에 눕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따뜻한 손바닥으로 거친 발바닥부터 시린 등까지 혈관의 흐름을 재촉하듯 원을 그리며 마사지를 하였다. '할머니 손은 약손, 울 애기 배는 똥배' 아련하게 할머니 무릎에 누워 배를 쓰다듬어 주던 그 음성이 들리는 듯 스르르 몸이 풀어졌다. 서너 시간 동안 쉼 없이 흐르던 분비물이 언제 그쳤는지 깊은 잠에 빠졌다.

소루마사지 시술을 끝내고 밥알이 동동 떠 있는 미음을 찻잔에 담아 마주 앉았다. 연말에 날마다 이어지는 송년회와 회식 자리에 쫓아다니다보니 과식으로 위에 부담이 많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과식한 음식이 독이 되어 독소를 배출하려고 콧물과 눈물이 나온 것이니 며칠 식사를 조절해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렸을 때에는 못 먹어서 병이 됐는데 지금은 너무 먹어 병이 된다는 말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위가 30%는 비어 있다고 느낄 만큼만 먹으라는데 생각해 보니 끼니마다 마치 위장에 꾹꾹 눌러 음식을 쟁여놓듯 먹은 것 같다. '입만 자기 몸인 줄 안다'며 입으로 먹는 즐거움 때문에 다른 장기에 부담을 준다는 것이다. 식탐이 유별난 내 몸이 걱정됐다.

요즈음 디톡스(detoxification-detox)라는 말을 쉽게 접한다. 디톡스는 몸 안의 독소를 없애는 해독(解毒)으로, 생물의 몸 안에서 독의 작용을 없애는 과정이다. 우리 몸은 각 기관마다 해독능력이 잘 갖춰져 있음에도 누적된 스트레스·과로·과식으로 독소들을 제대로 배출시키지 못하고,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연장돼 독소 누적이 더 오랜 기간 일어나 인위적 해독도 필요하다고 한다.

몸에 이상이 오면 한 끼쯤 거르거나 묽은 죽으로 속을 달래주라는 얘기를 듣고 나니 배부르게 쌀밥을 실컷 먹어보고 싶었던 빛바랜 소망을 이제는 기억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마지막 숟가락질 앞에서 배고픔에 주린 사람의 몫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과식으로 해독이 필요한 사람과 먹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이 오늘, 각자의 자리에서 목숨을 잇고 있다.

다시 콧물이 나오면 나는 죄책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유인순 한국문인협회 천안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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