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은 항상 허망하게 한다. 우상은 썩은 고기 덩어리 같아서 아무리 보자기로 싸서 덧칠을 해도 결국 썩은 냄새를 풍기고 만다. 한번 썩은 고기는 끓는 물에 아무리 삶아도 생고기로 돌아오지 않는다. 속을 들여다보면 이미 썩어버린 인간일수록 사람들 앞에서는 싱싱한 고기처럼 냄새를 피우려고 덤빈다. 천하에 좋은 말만 골라서 하고 남을 위하여 봉사하는 일꾼처럼 떠벌리지만 뒤로는 온갖 잡질을 일삼으면서 오직 들통이 나지 않기만을 바라고 턱 없이 사기를 친다. 그러나 이러한 사기 행각은 오래가지를 못한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고 긴 꼬리는 아무리 감추어도 그 끝이 보이게 마련이다. 그 꼬리 끝에서 믿음이 배신으로 돌변하는 흉한 꼴을 당할 때까지 탈을 쓰고 버티어 본들 결국 들통이 나고야 만다. 세상을 속여 넘길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그것은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렸다고 장담하는 짓과 같은 까닭이다.

관리들이 늘어져 빈둥거린다고 엄한 훈령을 내려도 먹혀들지 않을 때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반성할 때이다. 높은 자리가 탈을 쓰면 아랫자리들은 광대가 되어 한 수 더 뜨려고 하는 것이다. 선한 원님이 오면 아전의 허리가 굽혀지고, 독한 원님이 오면 아전의 목이 길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윗사람이 제대로 하면 아래는 그냥 따라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위가 바르지 못하면 아래는 빈둥거리면서 무서운 것이 없다는 듯이 춤을 춘다. 옛날에 이러한 춤을 탐관오리들이 관청에서 추었지만 지금은 뇌물을 받고 딴 살림을 차리려고 한다. 썩은 관리들이 많다는 것은 위가 다 썩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고 바르지 못함을 말한다. 위아래가 없는 세상을 두고 보통 사람들은 개판이라고 한다. 하나의 밥통에 두 마리의 개가 입을 대면 주인도 가까이 가면 개들이 물어 버린다. 이처럼 위아래가 부정하면 백성만 죽어간다.

한강 북쪽에 소양댐이 생기면서 잠실 자갈밭이 각광을 받았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한강에 홍수가 나서 잠실벌은 반드시 물바다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못난 강변으로 그저 주인 없는 땅위에 미루나무들만 얼기설기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소양강댐이 막히자 잠실 자갈밭은 금밭으로 변했다. 홍수의 위험이 없어지면서 버려졌던 자갈밭 위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덩달아 상가와 시장이 들어서게 되었다. 그 덕분에 잠실 들에서 논농사를 지어 어렵게 살던 농부들은 하룻밤 사이에 떼 부자가 되었다. 가난했던 마을이 졸지에 벼락부자 마을이 되어 남들의 부러움을 샀었다. 평당 몇 백 원을 받고도 못 팔았던 논들이 평당 몇 십 만원에도 없어서 못 팔 지경이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렇게 땅값이 치솟아 그동안 궁했던 농부들은 너도나도 다투어 땅을 팔아넘기고 수십억, 수백억을 한몫에 몰아 쥐게 되었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자 그들은 가난했던 지난날의 한이라도 풀 듯 돈을 마구 써댔다. 가난했을 때는 안팎으로 손에 못이 박히도록 일을 해야 겨우 목에 풀칠을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가난한 마을은 서로 오순도순 살 수가 있었다. 그러나 벼락부자가 되자 먼저 양옥이나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가기 시작했으므로 이내 벼락부자 마을은 없어지고 말았다. 좋은 집을 사서 뿔뿔이 이사를 간 벼락부자 마을 사람들은 바쁘게 되었다. 부자 연습을 하고 부자 흉내를 내느라고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벼락부자의 남편은 신사 바람을 피우고, 아내는 유한마담 바람을 피우고 아이들은 망나니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있는 돈이라고 부자들이 사는 것이면 무엇이든 앞다투어 사들여 놓고는 사용할 줄을 몰라 그저 전시품으로 집안에 늘어놓을 뿐이다. 말하자면 ‘나는 부자다’라고 과시를 하는 꼴밖에는 안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벼락부자에게 찾아오는 손님이 있었다. 천하의 사기꾼들이 모여들어 회장님으로 모시겠다고 해놓고는 별의별 회사를 차린 다음 헛바람이 들어버린 농사꾼 벼락부자를 울궈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 삼년 회장님 소리를 들었던 벼락부자는 잇는 돈 다 털리고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본래 벼락부자는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졌으므로 그렇게 망해가고 마는 법이다. 묵은 부자 삼대 가기도 어려운 일인데 벼락부자는 벼락처럼 치다가 사라질 뿐이다. 헛배가 불렀던 잠실벌 농사꾼은 이러한 이치를 몰랐던 셈이다. 알거지가 다된 농사꾼은 결국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뒤 늦게 알고 졸부의 행진을 멈추고 먼 시골로 내려가 날품을 팔게 되었다. 이렇게 소양강댐을 막고 강남을 개발하면서 하루살이 졸부들이 많았던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현실이 이와 다르지 않다. 또한 정치인들 역시 지금도 졸부의 행진을 멈출 줄 모른다. 현실과 역사는 말해줄 것이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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