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한 주말 오후 대전 시내 전시회 나들이를 나갔다가 많은 작품들을 보았는데 유독 내 머리 속에서 맴도는 작품이 있었다. 모리스갤러리에서 본 이재윤의 작품이었는데, 그의 작품은 첫눈에 어린 아이의 그림 같았다. 수많은 세련된 그림들 다 놔두고 어린 아이 그림 같은 그의 그림 앞에 왜 내 발길과 마음이 머물게 되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그림에서는 무엇인가 연신 "놀라워요! 기뻐 죽겠어요! 대단해요! 신기해요! 너무 슬퍼요! 감사해요!"라며 감탄하는 마음이 그대로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그의 작품 두 점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중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는 그림 제목과 내용이 알쏭달쏭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림 내용이 궁금해서 갤러리에 있던 분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는 그림의 내용은 모르겠고 그림을 그린 사람이 서른 살 청년인데 다운증후군으로 지능이 현저히 낮다며 그 청년은 성경에서 감동 받은 내용들을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목이 잘못된 것이고 'Jesus Christ Superstar'에서 감동받은 장면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성경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기적 같은 내용들을 대하고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버리기 일쑤인 것과 달리 그는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는 어린 아이의 순진함으로 경이로움에 감탄하고 그 감탄을 곱씹으며 그림에 옮겨놓는 것 같다.

그 그림에는 삼각뿔처럼 우뚝 솟은 두 산이 있는데 각각의 산꼭대기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앞쪽 산의 십자가는 산 높이만큼이나 크게 그려져 있고 뒷산은 앞산보다 높이는 높지만 꼭대기의 십자가는 아주 작다. 처음 그림을 봤을 때는 이 산이 저 산으로 옮겨지라고 하면 말씀대로 되리라는 건가 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앞의 산의 산만큼 큰 십자가 뒤에는 커다란 해가 가려져 있고 뒤의 산의 십자가는 졸지 않고 보초 서듯 달을 지키고 있다. 아래에는 ('Jesus Christ Superstar'에서 감동받은 장면에 나오는) 버스와 십자가를 경이롭게 올려다보며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자들을 낮에도 밤에도 쉬지 않고 지켜주는 십자가 은혜를 표현하려는 듯 해와 달, 낮의 하늘과 밤의 하늘의 두 십자가는 그의 그림 속에서 나란히 함께 놓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 그림의 색상도 밝고 선명하면서도 강렬하거나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연둣빛 앞산과 개나리 색 뒷산, 앞산 꼭대기의 갈색 십자가와 그 뒤로 언뜻 보이는 샛노란 태양과 뒷산 갈색 십자가 위에 떠 있는 연노란 초승달, 그리고 앞산 주변 낮의 하늘색과 뒷산과 달 주변의 밤하늘, 초록 옷과 붉은 옷의 사람들 색상이 각각 경쾌하고 개성 있으면서도 서로 어우러져 조화롭다. 이재윤의 작품은 우리 안에 사그라져가는 경이로움에 감탄할 줄 아는 감성을 되살리도록 우리에게 손짓한다.



/황혜영 서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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