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의 가정교육은 우리의 전통적인 가정교육 방식과 유사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 중의 하나. 엄격함과 자애스러운 양면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전통적인 우리의 가정교육은 엄부자모(嚴父慈母)라는 말로 대변할 수 있다. 아버지는 엄히 다스리고 어머니는 자애스럽게 감싸준다는 뜻이다. 이것은 대단히 현명한 방식이다. 아버지에게 벌을 받는 어린이를 달래주고 감싸주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반드시 아버지는 엄하고 어머니는 자애스러워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부모중의 누구 하나는 어린이를 달래주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엄모자부(嚴母慈父)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양쪽이 다 엄하거나 반대로 둘이 모두 자애(慈愛)하는 데에 있다.

유태의 격언 중에는 바로 이 점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오른손으로 벌하고 왼손으로 안아주라.”는 말이다. 이 말은 가정교육에 있어서 엄함과 자애스러운 포용성을 겸비해야 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유태의 어머니들이 어느 정도 이 가르침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지 그것을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엄부자모의 형식은 뚜렷한 것 같다. 유태가정에서 아버지의 부권(父權)은 최대한으로 존중되고 만일 어린이가 잘못을 저지르면 아버지의 추상같은 채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벌을 받는 어린이를 그대로 버려두지 않는다. 어린이가 그날 잠들기 전에 어머니는 반드시 자애스런 손길로 또 다정한 말로써 어린이의 기분을 풀어준다. 그리고 왜 벌을 받게 되었는가를 차분하게 설명해준다. 이와 같은 방식은 어린이가 한 독립된 인격으로 성숙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어린이에게 일찍 좋은 습관을 길러주고 바른 태도를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벌은 필요하다. 다만 어린이가 벌을 받기에는 아직 의식이 성숙되지 않았거나 또는 어린이의 잘못이 아니라 부모의 울분을 배출하는 수단으로 어린이를 벌할 때에 부작용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어린이가 부모의 사람을 받고 있다는 의식이 있을 때에는 웬만한 정도의 벌이 주어지더라도 어린이들은 그것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우리나라 가정에서 어린이에게 심한 욕을 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욕의 내용을 따져보면 대단히 심각한 욕일 경우가 많다. 듣기에도 끔찍한 적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어머니의 지나친 욕에 그렇게 큰 문제를 야기 시키지 않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는 어머니와의 기본 신뢰감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어린이는 욕을 먹거나 벌을 받더라도 어머니의 사랑만 충분하다면 그러한 벌이 어린이에게 어떤 심리적 상처를 만들지는 않는다.

어느 소아과 의사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어느 날 30대의 젊은 부인이 이제 채 두 돌이 되지 않은 어린이를 데리고 그의 진찰실을 찾아왔다. 어느 모로 보나 대학교육을 받은 귀부인 차림의 가정부인이다. 그런데 그 뒤에는 좀 허술한 옷차림의 16-7세 소녀가 따라 들어온다. 애보는 사람인 듯 했다. 진찰이 시작되고 의사는 어머니에게 몇 마디의 질문을 했다. “언제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지요?” 이 질문을 받은 어머니는 뒤를 돌아보며 “언제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지?”하고 애보는 소녀에게 물었다. 질문은 계속된다. “애가 뒤는 제대로 봅니까?” 역시 마찬가지로 뒤를 돌아보며 “변소에는 언제 갔었니?” 좀 불쾌했지만 계속해서 물어 보았다. “밥은 잘 먹습니까?” 천연스럽게 다시 돌아보며 “얘 요즘 밥은 잘 먹니?” 이쯤 되면 의사선생도 흥분할 만도 하다. 어머니의 정성어린 보호와 그칠 줄 모르는 사랑을 모르고 자라는 어린이.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방임된 어린이. 어머니의 따뜻한 손에서 자라지 못하고 가정부에게 맡겨진 어린이에게서 제대로 형성된 인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역시 어린이가 제대로 자라기 위해서는 엄격한 규율 밑에서 응분의 훈육을 받아야 하지만 이와 동시에 어머니의 품에서 응석을 부릴 수 있는 경험도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유태의 격언 “오른손으로 벌하고 왼손으로 안아준다.”는 말을 깊이 음미해볼 만하다.

어린이에게는 먹을 것만 주고 가르치는 것은 가정교사에게 맡기면 된다는 방임적인 어머니의 태도는 어린이로 하여금 부모의 애정을 의심하게 하고 애정의 결핍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 가정교육에서 현저하게 눈에 띄는 것은 지나친 사랑, 방인(放任), 거부(拒否)의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모두는 어린이의 독립된 인격형성을 위해서 좋지 못한 것들이다. 자녀가 귀엽다고 모든 일에 “오냐 오냐”하는 것은 버릇이 없고 자기중심적인 비현실적 인격을 형성하게 된다. 어린이의 진정한 인격형성을 위해서 요구되는 것은 애정 있는 훈육을 적절히 수행하는 것이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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