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목수(木手)를 지칭한 데 대해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목수라는 특정 직업이 아니라 기능인의 한 예로 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1895년 흑인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회학자이면서 민권운동지도자인 흑인사회 대표적 지성 뒤부아(W. E. Du Bois, 1868∼1963)는 "교육은 사람을 목수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목수를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목수를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은 사람다운 사람을 기른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라야 사람이지'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인가? 막상 한 마디로 정의하려 하니 막막하다.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무심코 일상적으로 사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사실 사람의 본성과 관련된 철학적 질문이기 때문에 정의하기 쉽지 않다. 수천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 왔지만 '이것이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한 마디로 명확히 단정짓기 어렵다. 사람다운 사람에 대한 의미는 상대적인 측면보다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 개념이 돼야 한다. 하지만 상황이나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사람을 이야기할 때는 됨됨이에 초점을 맞추는 인격과 사람다움의 성향을 의미하는인성이란 개념이 사용된다. 동서고금을 통해 사람의 본성을 논할 때 금수와 다른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사람의 본성으로 공자는 인(仁)과 예(禮)를, 맹자는 선(善)을, 순자는 예의(禮儀)와 도의(道義)를, 묵자는 의(義)를 각각 제시했다. 플라톤은 욕망과 의지나 격정을 다스리는 이성(理性)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옳은 행동을, 마르크스는 생산성을, 촘스키는 창의성·인권·사랑 등을 각각 강조했다.

오래 전부터 동·서양에서 제시한 인간의 본성은 사람답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 요건이라고 볼 수 있다. 모두가 중요한 성향이지만 그 중 예의를 강조하고자 한다. 논어에서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하지도, 듣지도, 행동하지도 말라고 했다. 예의는 이미 2000여 년 전에 사람다움의 주요 특성으로 강조됐으며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더 필요하다.

예의는 상대방에게 존경을 나타내기 위한 말, 몸가짐, 형식, 의식(儀式) 등이라고 볼 수 있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 질서를 의미하기도 한다. 질서는 사물의 규칙적 배열이나 배치의 원칙, 원인과 결과를 지배하는 원리, 지켜야 하는 차례나 절차 등의 사전적 의미로 쓰인다. 상대적 평등을 오늘날 대등주의로 착각한 나머지 사람 사이에 질서가 무너졌다. 예를 들어 교사와 학생간 질서가 무너지면 효과적인 교수-학습이 불가능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 질서가 무너지고 인간관계가 뒤죽박죽되면 인간 공동체를 유지하기 힘들다. 사람을 목수로 만드는 지식·정보·기술교육도 필요하지만 목수를 사람으로 만드는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홍득표 홍득표 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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