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고든 울포트는 성숙한 인격에서 발견되는 특징의 하나로서 유머 감각을 들고 있다. 어떤 사람이 성숙한 인격을 구비한 사람이냐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의견이 다르고 문화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어떤 사람이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입니까?” 이런 질문을 어느 누구에게 제기한다면 아마도 그는 “사랑하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답변할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사랑하고, 일하고, 놀 줄 알고, 하느님을 공경하는 사람”이라고 답변한다. 이 문제에 대하여 울포트는 좀 더 명확한 해답을 얻기 위하여 광범한 연구를 진행한 결과 성숙한 인격에는 반드시 비공격적인 유머감각이 구비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매즈로우라는 심리학자도 이와 유사한 결과를 찾게 되었다. 정신적으로 안정되고 건강한 인격의 소유자는 수준 높은 조크를 잘하고 유머를 이해할 수 있는 센스가 있다는 것이다. 울포트는 유머센스와 통찰력사이에는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도 발견하였다. 이렇게 볼 때 유머가 있는 생활은 교육적으로 중요한 뜻을 지닌다.

우리나라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와의 대화는 지나치게 사무적이라는 감이 없지 않다. 유머는 물론 정감이 있는 대화마저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다.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과의 대화는 그 대부분이 학교공부에 관한 것이거나 성적에 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둘 사이의 대화는 돈을 주고 또 돈을 받는데 관련된 내용이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

너무나 메말라 있는 것 같다. 부모 자식 사이지만 위트 있는 유머에 의해서 가정의 분위기를 좀 부드럽게 하는 것을 생각해 볼만하다. 우리나라의 가정교육과 유태의 교육을 비교해보면 어린이가 실수해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질책하는 방법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린이가 방에 있는 꽃병을 가지고 장난하다가 방바닥에 떨어뜨려 박살을 냈다고 생각해보자. 이 경우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이렇게 꾸짖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이구 저걸 어쩌나.

이 바보 같은 놈아 정신 좀 차려야지.” 또는 “이런 천치바보. 정신은 얻다 다 팔아먹었어?” 불안해서 떨고 있는 어린이에게 어머니의 노기에 찬 질책은 계속된다. “빨리 치우지 못해!” 물론 극단적인 경우이다. 교양 있는 어머니라면 그렇게 상스럽지 않은 말로 차분히 나무랄 것이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어머니에게서 위와 같은 반응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수긍해야 할 것이다.

이에 비하여 유태의 가정에서 볼 수 있는 부모의 반응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그러하다는 말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꽃병은 꽃을 꽂기 위한 것이야. 장난을 할 때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야지 꽃병을 가지고 놀면 되겠니.”, “재이슨! 그런 꽃병을 새로 사자면 돈이 많이 없어지지 않겠니.”, “꽃병은 깨지는 것이니까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배웠겠구나.” 비교적 온건하게 보이지만 어조에 따라서는 상당히 매서운 꾸중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어조나 질책에 내포되어 있는 감정보다도 여기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두 가지 질책 방식의 기본적이 차이점이다. 한쪽은 실수에 의해서 저지른 잘못보다도 어린이의 인격자체를 꾸짖는다고 할 수 있는데 반해 다른 한쪽은 인격을 손상시키지 않고 잘못된 행동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것이다. 유태의 가정에서는 “바보자식!”, “얼빠진 놈아!”, “넌 몇 번 말해야 알겠니!”, “지지리 못난 녀석!” 등 어린이의 인격 자체를 부정하는 말은 하지 않는 것 같다. 그것보다는 잘못된 행동이 왜 잘못되었는가를 설명해주고 또 그런 행동이 얼마나 많은 손해를 가져오게 되는가를 이해시키는 일에 치중한다.

가정교육의 실제에서 어린이를 바르게 나무라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잘못 나무라는 일은 오히려 어린이의 반항심을 조장하거나 다른 부작용을 낳게 하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것을 질책하는 것은 다시 그와 같은 행동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이의 인격자체를 부정하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공연히 “바보”니, 더 심하게는 “빌어먹을 자식”이니 하는 말을 연발해서 어린이의 자신감을 손상시키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의 인격형성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부모가 판단하기에 잘못된 행동을 구체적으로 지적해주는 것이 그 행동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다.

참고삼아 적어보는 것이지만 부모가 어린이의 잘못을 꾸짖은 방법을 위협형, 비교형, 나열형(羅列型), 조소형(嘲笑型), 변덕형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다시 그런 짓 했다간 없어!” 이것은 위협형이다. 무서운 벌이 앞에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예고함으로써 잘못된 행동의 반복을 막아보자는 것이다. “네 동생을 좀 봐라! 넌 어째 이 모양이냐?”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수치감을 자극하고 그럼으로써 분발을 촉구해 보자는 것이다. “아니 넌 어쩌자고 그러니! 꽃병을 깨지를 않나, 자전거를 망가뜨리지를 않나......” 어린이가 저지른 잘못의 역사를 캐는 것이다. 잘못을 나열해서 문제만을 계속 일으킨다는 것을 인식시키자는 것이다. “잘들 논다. 어디 좀 더 해보지!” 확실히 비꼬는 질책이다. 비웃어주면 수치스럽게 생각하리라는 계산이다. 끝으로 변덕형이 있다. 이것은 일관성이 없는 꾸지람을 의미한다. 거의 똑같은 정도의 잘못인데도 기분이 좋을 때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기분이 좋지 못하면 입데 담기 어려운 욕설을 서슴지 않는 변덕이 심한 경우이다.

어떤 형의 꾸지람이 되던 간에 이와 같은 꾸지람은 모두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것이 되지 못한다. 어린이들은 자라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고의 아닌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이 점을 깨달고 이해해야 한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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