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연길시 조선글서예가협회 주석 양동남

양 동 남
중국 연길시
조선글서예가협회 주석

단풍든 충북의 경치는 너무나도 아름답다.맑고도 높은 가을하늘과 가슴 트이는 싱그러운 공기...이보다도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고 안내하는 해동연서회 회원님들의 미소와 열정은 더더욱 아름다웠다.한민족 한 핏줄이라는 뜨거운 동포애와 7년째 한글서예로 이어져온 끈끈한 정 때문에서일까 전혀 낯설지 않게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7년전 우리 중국연길시 중·소학교 교사들에 대한 한글서예교육을 위해 연길에 오신 해동연서회 운곡 김동연 선생님을 처음 만나 뵈었다.

그때 우리는 중국에서의 한글서예의 실태에 대해 논의하면서 중국의 연길시조선글서예가협회와 한국 해동연서회와의 교류를 원했고 이에 김동연 회장님은 흔쾌히 응해주셔 교류협정을 맺고 그해 처음으로 한·중학생서예교류전을 개최하였다. 이것이 시발점이 된 한글서예 교류 사업이 더 확대되어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50주년을 기해 「한·중우리글서예연합전」및 중국에서의 한글서예발전을 위한 심포지엄, 한·중학생서예교류전과 함께 학생휘호대회 등 행사를 개최하여 한글서예 보급 사업에 큰 박차를 가하였다.

이렇듯 올해까지 7회째 매년 거듭해 온 한·중한글서예교류가 중국에서의 한글서예 보급과 교육 사업은 많은 발전을 가져왔으며 중국에서의 한글서예인구의 저변 확대에 큰 역할을 해 온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중국에서 한글서예는 그 뿌리와 전통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아 이북의'청봉체'라는 서체와 법도에 어긋난 제 나름의 글씨가 위주다보니 우리에게는 자기민족 문자예술에 대한 전통과 법도를 찾아야 할 일이 시급하였다.

한·중수교 무렵부터 연변에서는 한국과의 한글서예 교류를 가져와 한글서예의 고체와 궁체 등 서체에 대해 조금씩 인식하였으나 그 교류의 폭이 넓지 못하고 극히 개별적이었고 아울러 한두번의 교류행사로 끝마쳐 한글서예를 지향하는 서예인들로 하여금 매우 아쉽게 했다.이런 속에서의 해동연서회와의 교류는 참으로 우리에겐 가뭄에 단비였다. 매년 연길에서 여러 가지 방법과 형식으로 한글서예 교류전시를 펼쳤고 양국 서예인들은 함께 한자리에 앉아 한글서예의 서체와 전통에 대한 궁금한 내용들을 직접 대화를 나누고 그 해결책을 찾고 이를 통한 우리의 한글서예 수준도 더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해동연서회와의 교류를 통한 중국에서의 한글서예 보급 사업은 또한 많은 서예인들이 한글서예를 선호하는 계기가 되었고 한글서예의 위상이 더더욱 올라 이젠 그 보급이 연길뿐만 아닌 용정, 화룡, 왕청, 안도 등 그 파장이 넓혀져 연변은 지금 한글서예의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되었다.30여년의 역사와 더불어 지역문화 예술 사업에 큰 역할을 담당해 온 한국 해동연서회의 발전경험을 비추어 우리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한글서예의 발전 템포를 다그쳐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다.직지의 본향 청주, 청주의 세계최고 금속활자 기술이 정보통신 수단의 쾌속적 발전에 이바지하였다면 해동연서회와의 한글서예교류는 국제화 시대에 우리한글의 세계화를 실현케 하는 이정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필자는 젊은 나이에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연길시 조선글서예가협회의 주석이라는 중임을 맡고 한글서예의 보급 사업을 하는 과정에 많은 고배를 마셨다.돈이 되지 않는 사업이라는 주변사람들의 충고와 따가운 시선도 느껴야 하는 나 자신 역시 지갑이 가벼운 씁쓸함도 맛보아야 했다.그러나 스스로 좋아해서 공부해온 서예, 한민족의 근본인 언어와 문자, 그 문자예술을 위한 교육과 보급 사업은 거친 황무지를 개간하는 일과도 같았다.황무지를 개간하면 나중엔 거기에 씨를 뿌리고 거두는 보람과 행복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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