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청주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한 직장에서 30년 동안 근무한 a씨는 지난해 퇴직과 함께 우울증에 걸렸다. 오랜 세월 회사에서 열정을 다해 일하고 동료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a씨는 일터와 직장동료, 그리고 삶에 대한 희망까지 잃어버렸다는 자괴감에 마음이 울적했던 것이다. 친구들과 골프나 등산 같은 새로운 즐길거리를 찾아 나섰지만 30년의 일터만큼 소중하고 값진 일들이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공예비엔날레 행사장을 찾은 a씨는 마음의 변화를 감지했다. 도자 목칠 금속 섬유 유리 등 각양각색의 작품을 보면서, 그리고 수많은 관람객들과 함께 행사장 곳곳을 찾아다니는 자신의 내면세계에 새로운 활기, 즉 에너지를 느낀 것이다. a씨는 27일간의 전시기간 중 모두 1o회나 방문했다. 방문할 때마다 친구와 가족, 이웃사촌까지 동행했다. 작품을 보면 볼수록 신비스럽고 새로운 느낌에 마냥 즐겁다는 것이 그가 10번이나 행사장을 찾은 이유다. 그는 폐막식 날 필자에게 "작품은 보면 볼수록 기분 좋고, 안보면 안볼수록 손해인 것 같다"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만다라 미술치료'라는 것이 있다. 만다라는 원·중심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로, 만다라 미술치료는 원을 그린 후 그 안에 환자가 손이 가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만다라에 그린 상징, 문양, 색깔 등을 통해 그 사람의 무의식에 가려져 있던 심리, 불안 등 정신적 상태는 물론 육체적인 건강까지 드러나고, 이를 통해 스스로가 치유할 수 있다는 논리인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미술은 더 없이 좋은 미래지향적인 성장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울음이 전부였던 아이들은 자라면서 기쁨, 노여움, 슬픔 등 다양한 형태의 감정으로 세분화 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지나치게 억압당하면 정신불안과 성장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

미술은 어린이들의 다양한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도와준다. 각양각색의 색상과 놀이를 통해 묶인 감정을 표출해 풀고, 과다한 것을 다스릴 수 있게 도와준다. 공예체험의 경우는 더욱 효과적이다. 흙을 만지면서 자신이 만들고 싶거나 마음속의 생각들을 직접 표현할 수 있다. 거친 질감의 나무를 이용해 연필꽂이 책꽂이 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고 이것들은 곧 자신의 책상에서 언제어디서든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나만의 소중한 작품이 된다. 한지, 천조각, 금속조각 등 다양한 재료가 손끝의 감성을 거쳐 새롭고 신비스러운 작품으로 재탄생되는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2007청주국제공예비엔비엔날레 기간 중 실시한 '현장체험학습의 날'과 '어린이공예공모전' 역시 치유와 문화체험으로써의 무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지도교사에게는 가이드북을, 학생들에게는 전시관람 일기장을 배부하고 전시장에서 본 인상적인 작품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할 수 있도록 했다. 미술 또는 공예를 활용한 교육프로그램을 보다 체계적으로 마련하는 것도 문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훌륭한 문화시설과 문화인프라, 그리고 각계각층이 문화를 통해 정신적인 풍요와 삶의 질을 높일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치유로서의 미술은 이제 시작이다. 학생들의 창의력을 키우는 미술교육, 과학과 의술이 병행되는 미술치료, 미술과 디지털의 조화를 통한 상품으로서의 미술산업, 문화복지와 지역민간 상생을 이끌수 있는 예술장르 등 다양한 형태와 양식으로 새롭게 구성하고 창조한다면 지역의 새로운 문화브랜드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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