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58살에 직업 소개업 회사 대표로 다시 섰다. 오래 전 따뜻한 봄날, 손님이 왔다. 툇마루에 앉아 수첩을 넘기며 내 남편 이름을 찾더니 참한 혼처가 나타났다며 한 여성의 이름을 남편 이름 밑에 써보였다. 또박또박 연필로 쓰인 할아버지의 수첩은 지우개로 지웠다 쓰기를 반복해 종이가 부풀어 올랐다. 그 처녀와 궁합도 좋다는 말에 시어머니 표정이 살짝 흔들리다 연애결혼해 벌써 애 낳고 산다며 중매쟁이 할아버지에게 눈을 흘긴다. 그제야 나를 본 할아버지가 민망한 듯 입에 발린 칭찬을 한다. 조촐한 술상을 차려내고 지켜 앉아서 남편 이름을 아주 지우라고 요청했는데 할아버지는 못 들은체 하고 서둘러 대문 밖으로 사라졌다. 또 한 번의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신 걸까?

지금 하는 일이 중매 서는 일이나 다름없다 생각돼 혼인이 성사될 때까지 수많은 대상자를 섭외하고 연결하던 중매쟁이 할아버지의 두툼한 수첩이 떠올랐다. '성공취업패키지'는 주로 저소득층 실업자가 대상인 고용노동부 지원 사업이다. 건강보험 납부액 기준 일정액 이하인 만 18∼64세 실업자에게 취업을 지원하고 알선하는데, 주 30시간 미만 근로자도 고용보험 미가입자이면 신청할 수 있다. 일단 신청하면 개인별 전담 상담사가 배정돼 전문적인 취업진단을 받고 집단 상담을 하게 된다. 필요하면 직업훈련과정 소개, 이력서 클리닉, 면접동행도 한다. 이를 통해 취업하면 각 과정을 마칠 때마다 금전적 혜택도 받을 수 있으며 취업 후 근속기간에 따라 일정액을 지원받을 수 있다.

기업 또한 이 프로그램 이수자 채용 6개월 후면 고용촉진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중매를 잘못 서면 뺨이 석 대, 잘 서면 술이 석잔'이라는 말도 있지만, 성공취업패키지는 이를 통해 좋아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우선 고용노동부는 국가 고용률을 높일 수 있어 좋고, 기업은 인건비를 지원받을 수 있어 좋고, 취약계층은 이 기회를 통해 가난을 이기고 자의식을 회복할 수 있어서 좋고, 가족들은 희망을 얻을 수 있어 좋은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교육원을 운영하면서 직업·진로에 대한 관심으로 수료생을 취업시켜줬던 경험이 힘이 됐다.

파슨스라는 학자가 '자신을 이해하고 직업세계를 이해한 다음, 과학적 매칭을 해야 한다'는 직업지도 운동을 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국가적 지원프로그램을 통해 더 많은 저소득층이 한계를 딛고 일어서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책상에 쌓인 이력서를 본다. 신혼 때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중매쟁이 할아버지처럼 취업될 때까지 매칭을 시도하리라. 연애결혼처럼 자신의 힘으로 취업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환호가 터진다. 돈보다 더 큰 가치, 이것이 보람이다. 그동안 알고 지내던 사장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책상 위의 이력서를 오버랩시킨다.



/유인순 한국문인협회 천안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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