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수라상 독극물 검사로 쓰인 '놋쇠'

요즘 최고급 식기나 혼수용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방짜 그릇.

옛 선조들은 밥그릇 하나에서도 우리만의 과학을 뽑아냈다.

방짜는 '좋은 놋쇠를 부어 만든 좋은 그릇'을 가리키는 말이다.

원료가 되는 최상품의 놋쇠를 부어 낸 다음 다시 두드려서 만든 놋그릇을 흔히 방짜라고 지칭한다.

굳이 방짜라고 불리는 것은 그릇마다 밑바닥에 '방(方)'자가 찍혀 있었기 때문으로 방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 절묘한 조합 비율

방짜의 합금비율은 구리 78%, 주석 22%인데 현대공학에서는 주석의 양이 많아질 경우 깨지기 때문에 실용 용기를 만들 경우 주석의 양을 10% 이내로 추천한다.

그런데 방짜는 22%의 주석이 포함되어 있는데도 깨지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거듭되는 망치질과 반복적인 열처리가 방짜가 깨지지 않는 비밀이라고 말한다.

주석은 무르기는 하나 열에 강한 물질로, 달궈져 있는 한 아무리 두드려도 깨지지 않는데 지속적인 열처리로 주석의 취약한 성질을 극복한 후, 망치질로 주석을 잘게 부숴 흐트러뜨려 깨지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방짜는 1200도가 넘는 고온에서 주석과 구리를 섞은 후 합쳐진 쇳물로 판을 만들어 망치질로 두드려서 얇게 펴는데 식으면 다시 달궈 망치질을 거듭한다.

얇아진 판들은 서너 장씩 덧대 오목하게 가공한 후 원하는 그릇의 깊이대로 잘라내고 그릇형태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방짜는 아무리 두드려 패대도 결코 깨지거나 손상되는 법이 없다.


◇ 신비로움의 총아

이른바 웰빙시대로 접어들면서 방짜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바로 방짜 그릇에 물과 함께 미나리를 담가 놓으면 거머리가 방짜 그릇에 달라붙어 미나리를 깨끗이 씻을 수 있다는 것 등이다.

또 농산물을 재배할 때 무분별하게 사용된 농약도 방짜가 족집게처럼 검출한다. 농약 성분이 덜 세척된 재료를 사용한 음식물을 방짜 그릇에 담을 경우 자국이 생기는 것. 당연히 독극물을 가려내는 효과도 있다.

적어도 선조들은 방짜의 효능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극에서 왕의 수라상에 올라가는 음식물을 놋수저로 독이 있는지 여부를 검사하는 장면은 방짜의 이같은 효과에서 기인한다.

이외에도 방짜는 사람의 생명까지 위협한다는 'o157'균을 박멸하는 능력도 있는 것이 최근 과학적으로 규명돼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따.

스테인리스 용기와 사기 그릇, 방짜 그릇에 일정량의 균을 증류수에 섞어 넣은 후 16시간 후에 세 그릇에서 추출한 물을 배양했더니 다른 그릇들과 달리 방짜 그릇에서는 단 한 마리의 균도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o157균이 박멸된 것은 바로 청동에 들어 있는 주석 성분 때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사기 그릇, 스테인리스 그릇, 방짜 등 3개 용기를 대상으로 한 미네랄 성분 검사에서도 방짜는 특이점을 보였다. 방짜에서만 나트륨·구리·아연 성분이 소량 검출된 것이다. 미네랄은 우리가 필수적으로 섭취해야 하는 물질로 우리 몸 안에서는 생성이 안 되기 때문에 외부에서 섭취해야 하는데 이러한 결과는 우리 조상이 놋그릇을 통해 미네랄을 자연적으로 섭취했음을 짐작케 한다.

▲장영실이 제작한 자격루가 복원완료 됐다.

◇ 다른 나라에는 없어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방짜로 식기를 만들어 쓴 민족은 한민족 밖에 없으며 같은 문화권인 중국에서는 주로 자기를 사용했고 일본은 나무 제품이 주종을 이룬다.

방짜는 사기나 나무제품과는 격을 달리해 종가집에서 가보와 같은 귀한 대접을 받았고 대대로 물려주는 전통이 있었다.

일제시절 놋그릇을 모두 징발할 때도 방짜만큼은 끝까지 사수하려 했던 것이 우리들의 선조였다.

그러나 방짜는 주기적으로 닦아 줘야 황금빛을 내기 때문에 관리하기가 매우 힘들고 더구나 일산화탄소와는 천적이기 때문에 산업화에 따른 연탄의 등장과 동시에 갑작스럽게 자취를 감추었다.

그럼에도 방짜가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면서 전해져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사물놀이에 쓰이는 4개의 타악기 중 두 개인 징과 꽹과리만은 반드시 방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방짜로 만든 식기류들이 모두 사라지던 시대에도 선조들은 징과 꽹과리만은 고집스럽게 방짜를 주장했던 것이다.

주물로 찍어 낸 징은 음의 파장이 직선으로 곧게 뻗어 나가지만 방짜로 만든 징의 경우 맥놀이 현상이 나타난다. 맥놀이란 두 음파가 서로 간섭을 일으켜 진폭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현상을 말한다. 잘 알려진 에밀레종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맥놀이 현상 때문이다.

서양의 종은 같은 주물식이지만 맥놀이가 없다. 그러므로 은은하게 울리지 않고 소위 '학교종이 땡땡땡'이란 다소 경박한 소리가 난다.

그런데 우리 대형 종의 성분을 보면 주석 17.5%, 구리 82.5%이다. 주석의 양이 17.5%라면 현대공학상 권장 비율을 넘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선조들은 거대한 종을 만들었으며 특유한 맥놀이 현상까지 일어나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방짜가 갖고 있는 독특한 이 음파를 선조들이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시기에도 방짜로 만든 징과 꽹과리만 고집했던 것이다.

<자료 협조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대전=조명휘 기자 joe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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