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포럼] 신상구ㆍ향토사학자 천앙중 교사


▲신상구ㆍ향토사학자 천앙중 교사
아우내 장터의 '병천순대’는 전국에 순대 체인점을 두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콩·팥 등 각종 잡곡과 오이가 많이 출하되고 있는 병천은 잡곡과 오이 생산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가 하면 병천에서는 유관순 열사, 조병옥 박사 등 애국지사들이 많이 배출되어 충절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우내장터하면 아무래도 아우내 장터 ‘항일독립만세운동’과 ‘봉화제’가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곤 한다.

1919년 4월 1일 오후 1시 조인원 선생이 아우내 장터에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웠다. 그리고 그가 태극기를 들고 시장 군중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다음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유중무, 유중권, 조병호 등이 함께 큰 소리로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때 병천 헌병주재소 소산 소장 등 5명이 만세 소리에 놀라 시위현장으로 출동하였다. 그들이 시위 군중을 향해 해산을 요구했으나 시위는 가라앉지 않고 계속 되었다. 그러자 일본 헌병들이 군중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발사하여 19명이 즉사하고, 부상자도 30명이나 됐다.

항일독립투사인 포암 이백하 선생의 외아들인 고 이은창씨가 1977년 7월 1일자로 작성해 국가보훈처에 제출한 ‘항일독립투사 이백하 옹의 공적조서’에 따르면 기미년 4월 1일 아우내장터에서 선언된 독립선언서는 천안시 성남면 석곡리 출생의 유림 대표인 이백하 선생이 구국동지회명으로 자체 제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의 종합적인 기획은 이백하 선생이 맡았고, 자금 관계는 주로 유관순 열사의 숙부인 유중무 선생이 맡아 처리했다고 한다.

이 독립선언서는 기미년 3.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선언된 최남선 선생과 한용운 선사가 기초한 독립선언서가 너무 길어 그것을 참고해 이백하 선생이 직접 초안, 미농괘지에 수일간 철야 복사해 배부하고, 이백하 선생과 절친했던 조인원 선생이 기미년 4.1일 오후 1시에 아우내장터에서 낭독했다고 한다.

기미년 3.1운동 당시 지방에서 독립선언서를 자체 기초해 선언한 곳은 경상남도의 함안과 하동을 비롯해 3-4곳에 불과해 이백하 선생이 기초한 독립선언서는 한국의 항일독립운동사상 아주 드문 사례에 속함으로 그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클 뿐만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을 밝히는 데에 아주 중요한 향토 사료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하여 2008년에 5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조성될 예정인 ‘기미년 4.1일 아우내장터 항일독립만세운동 기념 공원’의 기념탑에 이백하 선생이 기초한 독립선언서와 순국자 19명의 명단을 새겨 영원히 보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옥중에서 끝가지 저항하다가 순국한 유관순 열사,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을 종합적으로 기획하고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이백하 선생, 자금 관계를 맡아 처리한 유중무 선생,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조인원 선생의 동상을 설립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또한 천안시청, 천안시 사적관리소, 천안·아우내·성환 문화원,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국가보훈처, 정부기록문서보존소, 천안시 교육청 등 유관 기관은 행정력을 총동원해 이백하 선생이 기초한 독립선언서 원본을 찾고, 구국동지회의 실체를 밝히는 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을 통해 아우내장터의 항일독립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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