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중등학교 국어교사이던 시절, 방학숙제로 종종 '부모님 전기문이나 러브스토리 써오기'를 내곤 했었다. 부모님 전기는 교과서의 위인전보다 소박하지만 그 못잖게 생생한 교훈의 소재가 되고, 부모님 러브스토리도 그 어떤 세기적 명작보다 더 솔깃한 사랑공부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아니, 그 숙제를 계기로 가족들이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의미 있는 교육 아닌가. 그것의 시작은 1990년대 중·후반 단양의 모 중학교에서였다. 당시 나는 수업 뿐 아니라 방학과제도 새로운 것들로 시도해보곤 했는데, 이 아이템은 시킨 교사가 더 큰 배움을 얻은 경우다. 아이들에게 인생과 사랑을 배우게 하겠다며 낸 숙제에, 검사하는 교사가 도리어 인생을 새로 배운 것이다.

아이들이 써온 글이래야 원고지 몇 매에 문장도 어설픈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그간 나도 제대로 알지 못해온 한 세대(내 또래)의 고달픈 삶들이 담겨 있었다.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바로 내 또래였다. 절반 가까이 중학 진학을 못했던 나의 초등 동기들이 그제야 떠올랐는데, 그들의 삶이 거기 들어 있었다. 아이들의 3분의 1 정도가 한부모~조손가정이었다. 그들의 부모는 거의 국민학교를 나온 뒤 중학 진학을 못하고 무작정 상경해 '보이'나 '시다', '공돌이·공순이'로 산 이들이었다. 그러다 눈이 맞아 살림을 차린 것이 사랑과 결혼이었고, 도시빈민으로 떠돌다 다시 낙향해 시멘트공장 주변에서 막일을 하거나 자식을 두고 어디론가 다시 '돈 벌러' 떠난 사연들이 대개의 가족사였다. 가정불화와 폭력, 술과 노름, 이혼 등의 찌든 살풍경들이 그들의 일상사였다.

그런 중에도 짠하게 만드는 것은 대부분의 글들이 "엄마 아빠 사랑해요…."로 끝나는 점이었다. 아이들은 이미 서로의 사정을 훤히 알아 숨김도 없었고, 돌아가며 발표하는 동안 교실은 금세 눈물바다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동병상련의 '힐링'이 이루어졌다. 평범한 가족들의 이야기는 도리어 가볍고 감동도 덜했다. 이 이야기를 십수년 시차를 넘어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요즘 '충북교육발전소'에서 벌이고 있는 '인생은 아름다워' 프로젝트 때문이다. 60대 이상 노인과 3명의 중고생이 짝이 되어 만드는 '어르신 자서전 쓰기' 공동작업. 이 시대 50대 이상 세대의 삶 치고 '대하드라마' 아닌 것이 있을까. 그들이 살아온 격동의 삶은 구술 자체가 스토리텔링이다. 요즘 어떤 광고 문구처럼 노인은 위대한 스토리텔러다. 그런 어르신은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길을 구술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손주 같은 학생들이 대필로 도와드린다. 학생은 인생도 배우고 글쓰기도 익히고, 그 시간을 봉사활동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게 된다.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산 교육'과 '생생한 공부'란 것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김병우 충북교육발전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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