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들이 나날이 푸르러지는 5월이다. 첫날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 17일 부처님오신날 등 행사와 기념일이 가장 많은 사랑과 감사의 달이다. 초여름이 시작된다는 입하도 지났으니 이제 어느덧 여름이다. 신록은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고 꽃은 경주를 하듯 앞 다퉈 피어난다. 작년 이맘때 핀 꽃이 올해도 피고, 작년 그 산나물도 시기를 정확하게 알고 올라온다. 산천에 달력도 시계도 없어도 계절에 따라 바뀌는 자연의 섭리가 경이롭다. 푸른 산이 손짓하고 푸른 오월이 속삭여 현암삼거리에서 선도산(547.2m)으로 향했다. 도로에서 가까이 보이고 나지막한 산 같은데 산등성이를 넘으니 숨이 차오른다. 청주에서 가까운 곳이라도 한강과 금강을 나누는 분수령인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이니 이름값을 하고 있다. 나무 그늘에 여자 두 분이 앉아 있다 먼저 인사 하며 쉬었다 가라 한다.

마치 아는 사람처럼 친근하게 대해줘 나도 모르게 옆에 앉으니 음식을 건네준다. 초면이라 사양 하니, 산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착하고 반가운 것이라고 덕담까지 해준다. 요산요수(樂山樂水)를 말하는 것이리라. 덕분에 오래 전 시골에 살 때 먹던 봄철의 별미 쑥버무리를 향수에 젖어 맛있게 먹으며 가슴 벅찬 인정에 감동도 먹는다. 후식으로 포도와 복분자주까지 한 잔 마셨으니……. 나도 두유가 하나뿐이지만 줬더니 고마워한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듯이. 잠시 대화를 나누며 아직은 살만한 사회라는 것을 느낀다. 자칫 경솔하게 행동하다 오해라도 받을까 조심하며 우선 경계한 것도 부끄럽다. 그렇다.

이 세상에 처음부터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다가가 먼저 인사하고 마음을 열어야 하는데, 괜히 이상한 눈으로 볼까봐 우리는 접근하려 하지 않는다. 외국 여행을 할 때 미소와 친절, 그리고 먼저 인사하는 것을 부러워하지 않았는가! '사람'을 발음하면 입술이 닫히고 '사랑'을 발음하면 입술이 열린다. 지나친 자존심과 허식에서 벗어나 서로 따뜻한 가슴과 정(情)으로 대하면 경계를 없애고 훈훈하고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 푸른 오월은 결혼식도 한창이고, 필자에게도 주례 요청이 오곤 한다.

처음에는 아직 미흡한 것 같아 사양했으나, 이젠 어엿한 부부가 돼 힘찬 출발을 할 때 축하와 덕담을 해 주는 것도 공덕이라는 생각이 들어 정성껏 서주고 있다. 경력이 많아져도 선생님이 어려움을 체험했듯 주례도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사명감에 어깨가 무겁다. 간혹 무덤덤하게 서있기도 하지만 대개 주례와 눈을 마주하며 미소를 머금고 경청할 때 좀 더 참신하면서도 평생 좌우명처럼 여길 수 있도록 훌륭한 주례를 해주고 싶다. 결혼식 후 혼주들까지 감사인사를 해줄 때 용기와 힘이 나고 더 잘 할 수 있는 동력이 되고 있다. 노천명 시인의 '푸른 오월' 싯구처럼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새 모양 내 마음은 하늘 높이 솟는다. 오월의 창공이여! 나의 태양이여!



/김진웅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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