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산! 산세가 어머니의 가슴처럼 부드러운 곡선이기도 하지만 이름 하나로도 따뜻한 어머니의 품이 연상된다. 부모님이라고 자주 불러 보지만 사람들 생각의 틀 밖에 있는 특별한 산 이름으로 해서 다정함을 느끼게 되는 산이다. 깊게 패인 계곡과 거친 암릉을 가진 산이었다면 이런 이름을 가질 수 있었을까 싶다. 청주라는 곳에 처음 와서 알게 된 무심천. 이방인이었던 나에게 소박한 이름 하나로 푸근한 마음의 자리를 내어 주었다. 부모산 역시 어떤 연유로 그렇게 불리는지 굳이 묻거나 찾아보지 않더라도 편안함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런 산이었다. 분가된 가족을 이루고 난 후 지금 살고 있는 곳에는 몇 해 전에 처음 이사왔다. 우암산·상당산만 바라보고 외우듯 하다가 이곳에 오고 나서야 비로소 가까워진 산. 발코니에 서서 석양이 떨어지는 곳을 보면 부모산은 나를 바라보고 나도 부모산을 바라보게 된다.

어느 휴일, 발목을 접지른 탓에 한동안 쉬라는 의사의 권유를 뒤로 한 채 부모산을 찾았다. 무작정 쉬기엔 체중이 한계선을 넘어서 무릎의 적이 되어 버린 탓도 있지만, 긴 시간 찾지 못한 오르막과 숲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부모산은 내 작은 그리움과 소박한 소망을 금방 풀어 줄 수 있는 곳이다. 어찌 그 뿐이겠는가. 고단한 일상의 피로와 고독, 견딜 수 없는 마음의 무거운 짐도 풀어 놓을 수 있는 산이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연인과 사랑을 나눌 수도, 자연과 대화도 할 수 있는 곳. 도시 옆에서 이런 저런 사람들의 사연을 다 받아내는 부모의 마음과 같은 산이리라.

산의 어깨를 빙 돌아가는 산성을 따라 돌면 부역으로 시달렸을 선인들의 노고가 들여다보인다. 옛 삼국의 접경 지역이었다고 하니, 자고 나면 땅 싸움하던 병사들이 흘리던 피는 또 얼마였을까. 대륙에서 이 땅을 유린한 침략자들에게 당한 서러움을 견디던 이들도 우리의 조상이자 부모님들이었다. 산성에 깃든 민초들의 눈물과 애환이 흘러내린 돌 하나하나에 박혀 있는 듯 하여 돌을 밟는 것조차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도시의 반대쪽 너머에 넓은 들과 손바닥만한 저수지를 바라본다. 봄에는 하늘을 비추는 물빛 조각이 반듯하고, 여름에는 초록의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이며, 가을이면 황금색 곳간으로 변하는 곳이다.

자식을 위해 한 평생 논밭에서 희생하시던 부모님의 삶이 점철된 들판을 산에서 내려 보며, 가정의 달 5월을 마무리해 본다. 온전히 산 한 바퀴를 돌아 터벅터벅 내려오는 길에 부모산에는 어느새 어둠이 내리고, 도시는 울긋불긋한 네온사인의 불빛으로 점등된다. 오늘도 부모산은 도시인들에게 그만큼의 짐을 털어 주고 지친 하루를 쉬러 고요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부모산 통신탑의 빨간 외눈은 외로이 껌뻑이고, 산을 가로 지르는 전선은 부모산을 대신하여 하루의 신음을 털어낸다.



/박재명 충북도 동물방역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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