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도쿄고등법원에 들어서는 이희자씨의 발걸음은 다소 지쳐 있었지만 그래도 당당했다. 이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를 해방시켜드리겠다는 굳은 각오와, 역사를 바로잡고 싶은 정의감에 가득 찼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버지 이사현씨는 일제강점기에 징병돼 일본으로 끌려갔다 일본병사로 전사, 도쿄 치요다구의 야스쿠니신사에 위패가 보관돼 있다. 야스쿠니신사는 1853년 패리 미 해군 제독 내항 이래 명치유신을 거쳐 제2차세계대전까지 국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일본인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종교시설이다. 1869년 명치천황 칙명으로 만들어진 도쿄초혼사가 1879년 이름을 야스쿠니신사로 바꿔 지금에 이르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현재 246만6532명의 위패가 야스쿠니신사에 '조국의 수호신', '영령'으로 봉안돼 있다는데 그 중 제2차세계대전의 전사·전몰자가 213만3760명(86.5%)이다.

그런데 문제는 명치 이후 제2차대전까지, 즉 일본 근대화 시기가 일본제국주의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청일전쟁부터 제2차세계대전에 이르는 과정에서 일본이 치른 많은 전쟁이 과연 야스쿠니신사 측의 주장대로 '조국을 지키기 위한 공무'였는지, 자국의 번영과 팽창을 위해 타국을 희생시킨 침략전쟁이었는지 일본인 자신이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야스쿠니신사에는 군인만 모셔져 있지 않다. 종군간호사, 군수공장에서 동원 중 사망한 학생 등 다수의 민간인들도 있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그 중 대만·조선 등 당시 일본 식민지 출신 병사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야스쿠니신사에는 신위 2좌가 있는데 1좌는 1959년 대만과 내몽고에 있던 신사에서 옮겨진 일본 황족이고 나머지 1좌에 남은 모든 '영령'들을 하나로 묶어 한 신으로 봉안하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 후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전쟁의 핵심 책임자로 판결을 받은 도죠 히데키 등 A급 전범들과 함께 한국인 2만727명이 합사돼 있다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지난 5월 12일 아베 총리는 한 미국외교전문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야스쿠니신사를 알링턴 국립묘지에 비유했데 만약 그가 진정 그리 믿고 있다면 사실을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1864년 조성된 알링턴 국립묘지는 독립전쟁 이후 미국 발전을 위해 희생된 이들을 기린다는 점에서 일견 야스쿠니신사와 흡사하지만 고인이 생전에 갖고 있던 종교의 자유가 철저히 지켜지고 묘지 매장 결정권은 본인 또는 유가족에게 있음이 다르다. 아베 총리는 한국인 유가족들이 여러 번 소송을 걸어도 패소하고 있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희자씨는 말한다.

"1945년 한국은 해방됐지만 아직도 우리 아버지는 야스쿠니신사에 감금돼 있다"고. 나라를 뺏은 원수와 같은 곳에 갇혀 '조국을 지키는 수호신' 취급을 받고 있는 억울한 영혼들을 하루 빨리 풀어줘야 되지 않겠는가? 올해도 일본의 여야 국회의원 168명이 야스쿠니신사를 집단 참배했다. 정치인들이 못 한다면 일본 사법 당국과 국민들의 양심을 보여줄 때다.



/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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