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하고 있는 일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일에 대한 학습과 역할 수행으로 내 시간이 압박 받고 있었다. 회사 월간행사표에 예상치 못한 스케줄이 또 추가됐다. 특성화고등학교 취업박람회에 참석할 학생들의 면접 클리닉이었다. 천안, 예산, 당진까지 일주일 만에 다섯 학교를 오가다 보니 단 십 분의 여유도 없다. 더구나 종강이 다가오자 한 강의에 100여 명씩 하는 몇 개의 강의 성적 입력 부담으로 마음도 무거웠다. 몸에서 여러 신호가 들렸다. 약국에 가서 물어보니 엄지와 검지 사이 이상은 간 기능 문제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며 임시방편으로 연고를 사용하란다. 소변도 거품이 있거나 진한 색을 띠고 냄새도 고약하다. 눈 밑이 파르르 떨린다. 기면증 환자처럼 적절치 못한 장소에서도 잠이 쏟아졌다. 가끔 한 가지씩 보내주던 몸의 신호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새벽에 당진에 가서 면접 특강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삽교천으로 빠졌다. 다음 스케줄까지 두 시간이 있다.
평소라면 회사에 들러 잠깐이라도 일을 보고 일정을 진행했을 것이다. 누운 소도 일으킨다는 낙지 생각이 났다. 빗방울 들이치는 창가에 앉아, 커피 마시듯 풍경을 음미하며 낙지를 먹었다. '소처럼 일한 당신, 낙지 먹고 일어서라.' 자꾸만 어떤 광고의 문장이 패러디돼 혼자 실실 웃었다. 1대29대 300의 하인리히 법칙은 노동재해가 발생하는 과정에 중상자 한 명이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상해를 당할 뻔한 잠재적 상해자가 300명이라는 법칙을 연구한 것이다.
이쯤에서 내 몸에 29번 정도의 신호가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300번의 신호는 이미 받은 터고, 29번의 신호도 감지된 듯하다. 마지막 남은 단 한 번의 신호는 나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줄 것이다. 공식 일정을 제외하고 여유시간을 찾아봤다. 그리고 영화 아일랜드처럼 쾌적한 침상에 몸을 묻었다. 건강한 세포를 배양하듯, 오후 다섯 시부터 다음날까지 내처 잠만 잤다. 일상에 빼앗겼던 수면욕구가 온몸을 덮쳤다. 수면요법 후 소변을 보면서 내 몸의 안부를 살폈다.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