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임동안 남다른 열정… 취업 일번지 자리매김"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책전문대… 근검절약 생활화
매월 1회 조회시간 "사람이 돼라" 인성교육 강조
평생기술 배우면 기회는 무궁무진

침체와 무관심 속에 웅크려 있던 한국폴리텍대학 충주캠퍼스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 이상영 학장(57)이 임기 말을 맞고 있다. 지난 2010년 9월 충주폴리텍대를 맡은 지 벌써 3년이다.

이 학장은 남다른 열정과 특유의 활동력으로 국책특수전문대학으로서 충주지역에서 폴리텍대의 위상을 한 단계 격상시켜 놓았다는 평가를 듣는다.

극심한 실업난과 경기 침체의 파고를 넘어 폴리텍대를 취업 일번지이자 지역 경제발전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 시킨 그 열정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한 여름의 문턱에서 이 학장을 만나 뜨거웠던 3년을 들어봤다.


충주시 목행동, 최근 4단지까지 100% 분양을 완료한 충주산업단지 초입에 자리한 충주폴리텍대학 교정에서 새파랗게 물 오른 나무들이 반긴다. 전국 34개 폴리텍대학 중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를 자랑하는 교정 곳곳에 애정 담긴 손길이 느껴진다.

대학본부 2층 학장실에는 여느 때처럼 소등된 채 한여름의 열기가 들어와 있다. 반갑게 악수를 건네는 이상영 학장(사진)과 마주 앉은 기자의 목덜미로 땀방울이 주르륵 흐른다.

▲ 이 상 영 폴리텍대 충주캠퍼스 학장 ©편집부


△여전히 에어콘을 안 켜시나 봅니다

3년간 있으면서 에어콘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불필요한 전등은 켜 놓지 않고 난방도 하지 않는다. 지금 이 학장실도 취임 후 창고에 있던 이런저런 집기들을 끄집어 내 만들었다. 폴리텍대는 나라의 돈,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책교육기관이다. 지금 온 나라가 전력난으로 비상상황 아닌가.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관사에서도 전기료는 몇 천 원, 한겨울 난방비도 3만 원 정도다. 살아온 인생이 그렇다. 낭비하지 않는다. 학장실 한 가운데 월중계획표 칠판에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 :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이루어지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이란 글귀가 적혀있다. 이 학장이 임기 3년을 마무리하는 마음가짐이 느껴진다.


△학교에 부임한 뒤 많은 변화를 가져 왔는데.

사립대 강의를 나가다가 폴리텍대에 왔다. 당시에는 폴리텍대학 자체를 몰랐다. '국가에서 이런 대학을 운영했구나'하며 의욕적으로 취임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교직원과 학생들, 학교의 느낌이 이상했다. 학생들은 불량학생(?) 같아 보였고, 학교는 무질서하고, 운동장 스탠드는 무너져 있었고, 지저분한 쓰레기장 같았다.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 지 막막했다. 취임해서 학교 청소부터 시작했다. 매일 쓰레기를 담기 위한 비닐봉투를 가지고 다녔다. 지금까지도 걸어서 출퇴근하면서 교내 한 바퀴를 돌며 쓰레기를 줍는다. 직원들에게는 피해의식이 있었다. 대도시 등 다른 캠퍼스에서 건너와 유배지라는 소문까지 있었다. 전국 최하위권 성적에 머물러 손을 놓은 상태였고 틈만 나면 대전이나 서울 등 외지로 나가려 했다. 이들에게 자긍심과 주인의식을 심어 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학장은 2010년 9월 취임하자마자 대학 알리기에 나섰다. 충주시내 각급 기관·단체장들을 캠퍼스로 초청해 대학을 소개하고 교육시설 전반을 안내하는 등 충주폴리텍대를 공개했다. 지역민들과 살가운 소통이 이뤄지는 봉사활동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학교의 장점인 전문기술을 활용해 주민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남다른 봉사활동이 시작됐다.


△학생과 직원들에게 인성을 유독 강조했지요?

학생들은 기술자격증을 1년에 3개 정도씩 딴다. 그러나 아무리 자격증이 많아도 제대로 된 인성이 따르지 못하면 기업에 보낼 수 없다. 기술은 백지 한 장 차이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매월 1회씩 조회시간에 '남한테 인정받고 봉사하고 약자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먼저 돼라'고 잔소리했다. 또 학생들과 스킨십을 많이 했다. 교내식당에서 365일 손을 잡아 줬다. 아버지와 형님, 동생의 마음으로(63세 학생도 있다) 다가섰다.

교원들에겐 '부정부패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모든 공사는 팀장에게 일임하고 일절 공금에 손대지 않았다. 업무추진비가 나오지만 필요한 다른 곳에 쓰도록 했다. 지금도 학장실 운영비가 얼마인지 모른다.


△충주라는 도시는 어땠나

충주 사람보다 내가 더 충주를 사랑하게 됐다. 토요일 일요일엔 집(대전)에 가지 않고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충주 구석구석을 다니곤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 사는 충주시민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충주 분들은 배타적인 습성이 있다. 역사적인 배경이 그런 영향을 미쳤겠지만 이제는 여기에서 벗어나야 할 시기다. 외지인들은 '퉁명스럽다'는 반응을 보인다. 살갑게 대해 줘서 다시 찾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 충주 지역의 행사는 굉장히 많지만 행사를 위한 행사가 되고 있다. 행사를 하나로 모아 지속할 수 있도록 새로운 사회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이 학장은 충주기업도시 준공과 경제자유구역 지정, 메가폴리스 조성, 동서고속도로와 중부내륙선 철도 추진 등 새로운 도약대에 선 충주에서 2년제 대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를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지역의 정치지도자들을 만나 공감대 형성에 힘쓰고 법인의 동의를 얻어내려 했다. 그러나 2년제 도입은 쉽지 않았다.


△2년제 전문학사과정 도입에 애를 썼는데….

모든 것이 광주나 대전, 대구, 창원 등 대도시 위주다. 실제로는 중소도시에서 인력을 필요로 한다. 청주는 전문대가 많은데 충주는 하나도 없다. 청주는 7개 학과가 2년제로 운영된다. 충주에 2년제 과정을 설치하려면 유사학과 통폐합 등 청주와 조율이 필요하다. 21만 명 인구의 충주시 규모와 충북 북부지역에 42개 고등학교가 분포된 현실에서 충주캠퍼스에서 1년 과정만 운영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본다. 현재 운영 중인 7개 학과 중 태양광학과 등 2개과 정도는 충분한 교육을 위해 2년제 과정이 도입돼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액 국비가 지원되는데다 교육장려금과 숙식이 제공되는 국책교육기관의 혜택을 충주가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고 있다. 신입생의 70~80%를 충주지역 자원이 채워야 한다고 본다. 교육의 기회균등 차원에서도 지역사회 각계각층의 관심이 필요하다.


△폴리텍대학의 구성원으로서 느낀 점이 있다면.

구인·구직의 미스매칭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부가 광역에서 뛰어줘야 한다. 실질적으로 권한을 가진 법인이 전국 기업체들의 구인정보를 취합해 폴리텍 각 캠퍼스별로 자원을 매칭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폴리텍대학이 없으면 취업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교원들의 퇴임 시 처우도 개선돼야 한다. 30년 이상을 근무하고 나가도 훈장 하나 없다. 폴리텍대학은 정치적인 조직이다. 정권에 따라 득세하는 세력이 있다. 2900억 원이라는 나랏돈을 쓰는 폴리텍대는 본연의 목적대로 고용창출의 중심이 돼야 한다. 법인이 바꿔줘야 한다. 각 대학은 결정권이 없는 관리자일 뿐 너무나 중앙집권적이다. 개인의 출세를 위한 교두보나 징검다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교육은 백년대계 아닌가? 중앙부터 공평하게 변해줘야 한다.그는 실용주의자다. 허명을 혐오한다. 폴리텍대학의 존재이유와 시대적 소임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재임기간 동안의 열정적 활동을 뒷받침했다.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할 텐데.

학교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 대외적으로 충주폴리텍대학의 존재를 알렸고, 안으로는 학생과 교원들의 자존감을 높이려 노력했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구성원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변화를 가져오는 근원적 동력이 된다. 재임 중에 2년제 과정 도입을 마무리하지 못해 아쉽다. 충주에 2년제 과정이 만들어지면 졸업자들의 역외 유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충주지역의 학생들이 전문대 과정을 여기서 이수하고 지역에 기반한 기업체에 취업해 고향에 터를 잡고 생활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청년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허명과 형식에 얽매여 온 모순을 단호히 벗어던지고 정년이 없는 평생기술과 재취업을 보장받는 폴리텍대학의 문을 주저없이 두드려라. 사농공상의 허명의식에 갖혀 있지 말고 평생 기술을 배워 직업을 찾아야 한다. 기술은 정년퇴직이 없다. 미취업자들이 기회를 못 찾아서일 뿐 길은 반드시 있고 기회는 무궁무진하다. 폴리텍에서 땀 흘리는 만큼 얻을 수 있다.



▲ 이 상 영 폴리텍대 충주캠퍼스 학장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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