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9일자 중앙일보에 눈길을 끄는 칼럼이 하나 있다. 한 경영인이 쓴 '21세기엔 '거미형 인재'가 뜬다'는 제목의 글. 내용인 즉, '창조경제'가 화두가 되는 요즘 그에 부합하는 인적자원으로 거미형 인재를 기르자는 것이다. 칼럼의 필자는, 거미형 인재란 "개성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미래상을 그려 가면서 거미줄로 먹이를 기다리는 선제적 스타일"이라면서,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를 그 모델로 든다. 그리고 "무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 가며 세상의 수요를 창출하고 미래사회를 선점하며 리드하는 유형"이라고 덧붙인다. 그는 이어서, 우리는 지금까지 거미형보다 '개미형 인재'를 길러 왔다고 지적한다.

근면·성실로 표상되는 근대산업사회의 상징 개미형. 그들은 주어진 여건 아래 묵묵히 최선을 다하면서 경제발전의 역군이 되어왔다. 하지만 앞으로 '창조경제'를 통해 초일류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거미형 인재들을 길러가야 한다…. 이것이 그 글의 골자다. 많은 부분 지당하고, 특히 새로운 인재상의 특성을 든 것이 퍽 일리가 있어, 많은 독자들의 댓글도 붙고 여기 저기 재인용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칼럼에는 결정적 오류가 담겨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형을 거미형과 개미형으로 나눈 것은 키에르케고르의 분류를 빌어다 쓴 듯한데, 그마저 단순 인용이 아니라 거미형의 특성을 심하게 왜곡해 쓴 것이다. 19세기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요 시인이었던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거미형과 개미형, 그리고 나비형. 키에르케고르가 이름 붙인 거미형은 본시 과거를 먹고 사는 퇴영적 유형이다. 생산적이거나 창조적인 것과는 아예 거리가 멀다. 물려받거나 한때 쌓아놓은 지식이나 경험, 지위·재산·명성 등을 그물망처럼 쳐 놓고, 그에 걸려드는 것을 먹고사는 유형. 자본가나 노년기 삶의 모습이 대체로 이러하다.

개미형은 우직하고 성실한 현실주의자다. 여유가 없어 생존에 급급하면서 '놀고먹는 거미형'을 부러워하는 유형. 청·장년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나비형은 미래지향적 유형이다. 자신을 적절히 탈바꿈 해가면서 성장해 가고, 자신의 몫을 챙기기보다 쉼 없이 탐험하면서 사랑을 전하고 생명을 일구는 것이 그의 삶이다. 이상의 나래를 펴고 한없이 꿈꾸는 아이와 같다. 이러한 키에르케고르의 분류 이후, 나비형은 종교계나 예술계 등에서 이상적인 캐릭터로 삼아 왔고, 요즘은 경제계에서도 21세기 '드림 소사이어티'를 이끌 인재상으로 꼽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중앙일보 칼럼의 거미형은, 이 나비형을 착각해 쓴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혹은 태생적으로 거미형인 자신 같은 경영인들을 은연 중 미화하려 한 것이거나…. 하긴, 의미가 중요하지, 이름이 대수일까만 유래가 있는 말을 왜곡해 쓰는 것은 문제가 있는 듯해 짚어보았다.



/김병우 충북교육발전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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