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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문화 유산 직지를 다시 찾다[직지의 재발견] 라경준ㆍ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연구사
라경준  |  news@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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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4.16  2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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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 인쇄 기록

유네스코는 1972년을 "세계 도서의 해" 로 선포하면서 유네스코 본부가 소재하고 있는 프랑스 파리에서는 "세계 도서의 해" 를기념하는 많은 행사가 있었다.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도 동 도서관에 소장된 세계 각 국의 고서(古書)들을 선별하여 《books》이라는 이름으로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이 때에 프랑스국립도서관 특별연구원으로 있던 재불학자인 박병선 박사에 의해 직지 가 금속활자로 찍은 책임이 고증되어 이 전시회에 출품되었다.

박 박사의 증언에 의하면 "1968년 혹은 1969년에 '직지'를 처음으로 접하였다.이 책은 당시에 중국 서적 코너에 중국 고서(古書)와 섞여 있었다.

▲직지목판본
'직지'의 맨 뒷장에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했다는 기록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러나 과학적인 증거와 논리적인 사고(思考)를 좋아하는 유럽 사람들에게 간기(刊記)만을 가지고 '직지'가 금속활자로 찍은 책임을 증명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이 금속활자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인쇄에 관한 여러 책을 보고 실험을 통해서 '직지'가 금속활자로 찍은 책임을 고증하여, 1972년 5월~10월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개최된 전시회에서 발표하였다."

'직지'는 박병선 박사가 1972년 12월 귀국시 사진판으로 복사하여 가져와 서울의 서지학자들에게 처음으로 소개하였다.

현재 이 책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특별 귀중본으로 보관되어 있어 일반인이 이 책을 보기는 매우 어렵다.

청주시에서는 일반인들이 '직지'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프랑스국립도서관측의 협조를 얻어 청주고인쇄박물관 홈페이지(www.digitaljikji.net)에 원본 사진 이미지를 게시하였다.

'직지'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되면서 국내·외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국내의 경우에는 그 충격이 엄청났다.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금속활자의 발명은 한국이 아닌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1455년에 만든 '42행 성서'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되어 왔기 때문이다.

13세기 초에 한국에서 금속활자를 발명 사용했다는 기록은 둘째 치더라도 1403년(조선 태종 3)에 만든 계미자(癸未字)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보다 52년 앞섰지만 서구 사회에서는 인정을 하지 않았다.

▲직지서근
그런데 국내 학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직지'가 1972년 5월 17일부터 10월 31일까지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개최한 《books》특별전에 출품되면서 한국의 금속활자 인쇄 문화가 유럽에 소개되었다.

이어서 1973년에 열린 《제29차 동양학 국제 학술대회》에서 박병선 박사에 의해 '직지'가 금속활자본임이 고증 발표되었고, 동 회의에 참석한 서구의 학자들에게서 인정받음으로써 한국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 사용했음을 전 세계에 알렸다.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직지'가 공개된 후 대다수의 국민들이 유네스코가 이 책을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한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당시에 유네스코에는 이 책을 공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었다. 또한 공개 당시 책 이름도 '직지심경'으로 알려져 국사 교과서에도 '직지심경'으로 기재되어 왔다.

이것은 박 박사의 증언에 따르면 "프랑스 사람들을 비롯한 유럽인들은 긴 이름을 좋아하지 않아 이름을 줄여 '직지심체요절'로 하고자 하였으나 제목을 줄여서 부를 경우 책의 내용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경우도 있어 염려하던 중, 책의 중간쯤에 백지로 '直指心經(직지심경)'이라 써서 붙여져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부제(副祭)라 여겨 원제목 대신에 사용하였다."

모든 시민이 직지 찾기에 앞장서야

'직지'가 1972년 프랑스에서 공개된 후, 국내에서는 금속활자본 '직지'를 찾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금속활자본 '직지'는 현재까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하권 1책 이외에는 발견되지 않았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한 '직지'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1378년 경기도 여주 취암사(직지의 저자 백운화상이 돌아가신 곳)에서 목판으로 찍은 '직지'는 상·하 완본이 3질 전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장서각한국학중앙연구원(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그리고 1997년 전라남도 영광 불갑사에서 발견된 것이 그것이다.

또한 최근에 경북 영주시 소재 흑석사에서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한 '직지'를 보고 그대로 베낀 필사본이 발견되었다. 이 필사본 '직지'는 1613년인 만력 41년(광해군 5)에 만들어졌다. 1613년은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끝난 직후이다.

7여 년 동안 우리나라를 침입한 왜군(倭軍)은 많은 우리의 문화유산을 불에 태워 없애거나, 일본으로 반출해 갔다. 이 와중에서도 금속활자본 '직지'가 훼손되지 않았음을 이 책이 증명해 주는 것으로, 금속활자본 '직지'는 국내 어딘가에 소장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직지'를 반드시 찾아 우리 문화유산을 후손에게 전해줘야 한다. 청주시는 '직지'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아직은 성과가 없다. 모든 시민이 '직지'를 찾아 나서야 할 때이다.

[해방 이후 최초 유학생 박병선 박사]

여직원 제보 … 외규장각도서 192권

▲박병선 박사
박병선(1926 ∼ )박사는 서울 저동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했으며, 해방 이후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다.

박 박사는 1955년 8월 초,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기 전 인사차 들른 서울대학교 사학과 이병도 박사에게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인들이 약탈해 간 문화재가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아직도 몰라. 자네가 사학을 공부했으니 그걸 찾아보기 바라네."

박 박사는 프랑스에 도착해 프랑스 말부터 배우기 시작하여 소르본대학에서 학사·석사를 거쳐 박사과정을 밟던 1967년, 중요한 전기를 맞게 된다.

당시 프랑스국립도서관(bnf) 측에서는 책을 자주 빌리러 오는 동양 여학생에 주목, 그녀의 석사 논문에 관심을 가지면서 도서관에서 일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일주일에 15시간 일하는 임시직으로 월급도 얼마 안됐지만 박 박사는 개의치 않았다.

박 박사는 "도서관에서 일하면 내가 원하는 것(외규장각도서 발굴)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 박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일하며 1967년 '직지'를 처음 보았다. 그리고 이 책이 금속활자로 인쇄되었음을 증명하여, 세상에 공개하였다. 또한 1978년 본인의 평생 꿈이었던 외규장각도서를 찾았다.

1978년 어느날 평소 알고 지내던 여직원과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외규장각도서가 화제에 올랐고, 이 여직원의 제보로 외규장각도서 192권을 프랑스국립도서관 별관 수장고인 베르사이유 궁정 지하 수장고에서 찾았다.

박병선박사가 1972년 '직지'를 고증한 후, 국내의 학자들도 이 책에 대한 많은 연구를 했고, 결과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청주시에서는 그 뜻을 기리기 위해 1998년 명예시민증을 증정했다. 한편 정부에서는 '직지'와 '외규장각도서' 고증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1999년 은관 문화훈장·2006년 국민포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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