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호열자 등 역사를 통해 변화한 병의 일상개념 탐색

[충청일보 신홍균기자]호환 마마 천연두·신동원·돌베개

7080세대라면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마마·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로 시작하며 일본 애니메이션 '크라잉 프리맨'의 장면 등을 차용, 불법 비디오의 위험을 알려주던 구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호환(虎患)'이란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것이다. 천연두를 '호환'·'마마''라 명명한 데에는 그만큼 치명적이란 뜻이 담겨 있다.

천연두는 우리나라의 병 중에서 가장 많은 이름을 가진 병이다.

두창(痘瘡), 마마('女+馬''女+馬'), 호구별성(戶口別星), 행역(行疫), 역질(疫疾), 손님, 호귀마마(胡鬼'女+馬''女+馬'), 호구마마(戶口'女+馬''女+馬') 등이 천연두의 다른 이름이다.

천연두라는 말이 일반화되지 않았을 때 쓰였던 이러한 용어들은 제각각 그만의 스토리가 있다.

신동원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과 교수가 쓴 '호환 마마 천연두'는 한국인이 앓아온 병(病)과 그 '병'의 개념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변화했는지를 탐색한 책이다.

저자는 개념사의 방법론을 활용해 '병'이라는 개념의 역사를 추적했다.

'마마'라는 어휘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은 1778년 출간된 '방언유석'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에 표기된 '두회료(痘回了)'는 조선말로 '역질도셔다'이고 청나라 말로는 '마마 마림비'다. '역질도셔다'는 '두신이 나간다'는 뜻인데, 이 뜻풀이를 통해 '두신(痘神)'에 해당하는 만주어가 '마마'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이를 통해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의 영향권 내에 들어간 조선에 '마마'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유입됐을 가능성을 타진한다.

'호귀마마'라는 말의 유래도 마찬가지다. '호(胡)'는 만주족을 말하는데 이후 '호귀(胡鬼)'가 '호구(戶口)'로 바뀐 것은 청과의 관계 회복, 즉 호에 대한 적개심 완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추정한다.

'괴질(怪疾)'이 '호열자(虎列刺·콜레라의 음역)', 즉 '콜레라'로 대체되는 과정 역시 그 병에 대한 인식이 반영돼 있다.

정체가 파악되지 않았다는 의미를 담은 '괴질'에는 병에 대한 무지와 치병의 불가능성이 담겨 있다. 이 병이 '호열자'로 불리게 되는 국면은 병인의 정체가 밝혀지고 치병의 가능성이 열렸음을 시사한다.

"괴질이 콜레라로 대치된 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다. '괴질'이라는 미지의 공포에서 벗어나 '콜레라'라는 설명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게 됐기 때문이다. (중략) 전통적인 조선 사회의 지적 능력이 '괴질'의 정도에 머문다면, 도래하는 새 시대는 무엇이라도 밝혀낼 수 있다는 진보에 대한 믿음이 충만한 '콜레라'의 새 시대로 상징화된다."(159쪽)

병을 다룬 역사적 텍스트를 두루 살핀 저자는 "병 개념에는 역사적 지형과 시간적 변화가 존재한다"며 "그리고 한국의 경우 식민지 경험과 제국주의의 침투라는 근대적 서사가 병 개념의 형성과 변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결론 내린다.


한림대 한림과학원이 기획한 '일상개념총서'의 첫 번째 책이다. 399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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