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중략….



어릴 적 새해 첫날이면 어김없이 부르던 친숙한 우리의 동요다.

섣달 그믐밤 잠이 들면 눈썹이 하얗게 쇤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두려운 맘으로 쉬 잠들지 못하고 아침이면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 비좁지만 따스한 아랫목에 형제 자매가 모여, 턱을 괴고 엎드려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왠지 가슴이 따뜻해지고 무언가 모를 기대가 몽글몽글 피어나곤 했었다.

예로부터 까치는 우리의 민요. 민속 등에 많이 등장하는 친숙한 새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오지나 깊은 산속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만 보더라도 까치는 사람들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오랫동안 함께해온 새임에 틀림이 없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선 1964년 10~12월 한국일보 과학부가 국제조류보호회의(icbp) 한국본부와 관계학계의 후원을 얻어 시행한 '나라새' 뽑기에서 당당히 22,780여 통 중 40%가 넘는 9,373통의 압도적인 표를 얻어 나라새로 지정되었고, 1966년 2월 24일 산림청 조수보호위원회가 수렵조류에서 까치를 제외시킴으로써 명실상부한 나라텃새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흑색과 백색의 조화로운 배색이며 날렵한 몸매는 물 찬 제비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자태가 여간 고운 게 아니다. 그런데 이 고운 까치가 요즘 농촌 곳곳에서 골칫거리로 대두되고 있다. 식성으로 곡식의 낱알과 과일을 주로 먹다보니 농촌 곳곳에서 그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지난 가을 지인의 과수원에 잠시 들렀을 때, 과수목 아래 수북이 떨어진 사과를 보고 연유를 물어보았더니 까치가 쪼아댄 상품성 잃은 사과라 모두 폐기처분할 거란다.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짠했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과일을 다 수확하지 않고 까치밥 몇 알 정도는 그림처럼 남겨둬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내는 여유를 엿볼 수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까치의 수가 적어 피해랄 것도 없었겠지만 지금은 그 수가 어마어마해 농민들의 한숨은 날이 갈수록 심하다.

직접 부딪힐 일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저 반가운 새로 아침에 까치소리를 듣고 나면 뭔가 새 소식이 올 것만 같은 황홀한 기대감으로 하루를 충만하게 보낼 수 있겠지만, 무릇 사람이든 미물이든 처한 상황, 그 환경에 따라 평가 방법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요즘 한창 대권주자들이 풀어놓는 공약들을 보면서 우리 국민이 느끼는 감정도 가지각색일 테고 그에 따른 평가도 천차만별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기업인은 기업인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또 학생은 학생대로 제 각각의 주관과 잣대로 평가를 해 소중한 한 표를 누구에게 던질 것인가 고민이 많겠지만 정말 우리의 미래를 위해 희망의 불씨를 당겨줄 이가 누구이며, 그 정책은 과연 어떤 것인가를 좀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꼼꼼히 따져 볼 일이다.

까치가 많은 농작물 피해를 주는 새임에도 길조임을 부인할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까치 까치 설날은….을 노래하며 몽글몽글 피워 올리던 희망의 뭉게구름을 새해엔 다시 한번 온 국민 가슴 가득히 품어보고 싶다.

신 새벽 이 나라를 청량하게 깨울 까치소리 같은 사람 어디 없소?


윤 현 자
시인 충북시조문학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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