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유난히 긴 폭염이었고 열대야도 연일 지속되어 소중한 생명까지 잃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태풍까지 몰아낼 정도로 맹위를 떨치던 불볕더위도 처서(處暑)가 지나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아침저녁으로 서늘하고 바람도 달라지니 절기(節氣)는 못 속이는 모양이다. 처서는 여름이 지나가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여 더위를 식힐 수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을 타고 온다.'고 하며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계절의 엄연한 순행을 드러내는 때이다. 가을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입추가 가을 문턱임을 알리면, 처서는 여름이 물러남을 알리고, 백로가 지나고 나면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된다. 조상들은 입추가 지나면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며 쓰르라미가 울고, 처서부터 벼가 익는다고 했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안의 곡식이 준다."는 말처럼, 어느 때보다 따가운 햇볕을 듬뿍 받아야 할 때인데, 올해는 너무 장기간의 가뭄 끝이라 처서에 비가 내렸어도 반겨주는 단비였다.

가을맞이

산책을 나가보니 얼마 남지 않은 여름을 마감하는 시민들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며 즐기고 있다. '마감'은 한자어가 아니고 순우리말이라는 것도 알았다. 인파에 휩쓸려 남실남실 부는 산들바람과 더불어 걷다보니 명암저수지이다. 언제 와도 반겨주는 정겨운 곳이다. 특히 이곳 야경은 고즈넉하게 마음을 가다듬어 준다. 가로등 아래에서 수줍게 반겨주고 있는 코스모스가 가을의 문턱이라고 속삭이고, 반바지 차림이던 옷차림도 차츰 긴 옷으로 바꾸어 입은 것을 보니 유별나던 여름을 보내고 가을맞이를 할 때이다.

우리 학생들도 여름방학도 끝나고 지난주부터 새학기가 되어 새로운 다짐으로 새출발 한다. 요즘은 방학에도 각종 교육활동으로 등교하는 날이 많지만.

저수지 부근에 있는 화장실에 갔다. 모자라는 전기 사정에도 밤새 불을 밝혀주고 있다.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 깨끗하여 상쾌하다. 양심을 어기고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문득 조선족이 많이 사는 중국 흑룡강성 일원의 문조차 없는 화장실과 비교된다. 도로를 몇 시간씩 달려도 휴게소가 없었다. 우리가 행복지수가 낮은 편인데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는 더 가다듬으며 긍지를 가져도 좋지 않을까?

건강하고 행복한 삶

윗몸일으키기를 하려니 몇 사람이 앉아있어 한참 기다려 겨우 차지했다. 벤치는 그냥 비워두고 그곳을 의자삼아 앉아 있으니 나밖에 모르는 사람 같다. 다른 사람 배려를 해야 하는데. 운동을 하다가 잠시 누워서 하늘을 본다. 별빛이 영롱하여 별을 세다가 샛별과 북두칠성을 찾았다. 북두칠성은 용호사 쪽 산 위에 걸려 있다. 밤하늘을 보니 만물의 영자이라는 인간의 존재도 미약하기만 하다. 그래도 걱정은 끝이 없다. 부근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온다.

올해 농사는 잘 될까? 추석 차례상, 물가, 김장, 자녀교육 등 걱정을 한다. 모쪼록 올해도 풍년이 와서 경제사정이 윤택하게 되고 일자리도 많아져 모두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되기를 처서를 보내며 소망해 본다.
▲ 김진웅수필가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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