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자글자글하다. 그토록 무더운 여름이었건만 어느새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었나 보다. 예부터 가을을 등화가친의 계절이라 했던가. 한낮에도 한줄기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이 가을에 책 읽기만한 도락이 또 있을까 싶다. 독서의 중요함을 일깨운 이는 아무래도 세종대왕이 아닌가 싶다. 사가독서(賜暇讀書)제도를 지속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신하들에게 높은 학식과 교양을 쌓도록 했으니 말이다. 요즘 공직자들이 여기저기서 책읽기 모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며 그들에게 거는 기대도 높다. 독서에는 마력이 있다. 조금 배고플 때 책을 읽으면 소리가 두 배로 낭랑해져서 책 속에 담긴 이치를 맛보게 되니 배고픔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또 조금 추울 때에 책을 읽으면 기운이 소리를 따라 몸 안으로 흘러 들어와 편안해져 추위를 잊을 수 있게 된다. 근심·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은 글자와 하나가 되고 마음은 이치와 더불어 모이게 되니 천만 가지 생각이 일시에 사라져 버린다. 기침이 심할 때 책을 읽으면 기운이 통해 막히는 것이 없게 되니 기침 소리가 순식간에 그쳐버린다. 그렇다. 독서는 배고픔도, 추위도, 근심 걱정도, 기침도 없게 해주는 명약이 아닌가. 일에 정성을 다하는 공직자의 마인드가 독서로 더 큰 지혜를 모은다면 통장에 잔고가 없다고 불안할 리 없고, 읽을거리가 없음에 불안해 하지 않을까 싶다.

책은 많이 읽을수록 좋다. 하지만 '서불필다간 요지기약(書不必多看要知其約)'이라 했다. 책을 많이 읽기보다 핵심을 파악하라는 말이겠다. 송나라 때에 정이천이라는 대학자가 있었다. 그는 주자의 스승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에게 어느 날 학문하는 방법에 대해 묻자 "모름지기 책을 읽으라"고 전제한 후 "책을 많이 읽기보다 핵심을 파악하라"고 했다 한다. 그리고는 "많이 알고도 그 핵심을 모르는 자는 서사(書肆)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즉 '책방 주인'과 다름이 없다 함이겠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책읽기를 가을맞이 일정표 첫 줄에 놓아 보면 어떨까. 가을이 익어 찬바람이 불고 우수수 낙엽이 떨어질 때쯤이면, 우리는 독서의 갈증에서 얼마간 해방된 자아를 발견하리라. 그리고 단풍들이 화려한 마무리를 연출하는 슬기로운 표정 앞에 독서로 쌓은 겸손으로 잃어버린 자아를 찾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한껏 가슴을 열어 독서의 뿌듯함을 실감하면서 나의 삶이 보다 살쪄갈 것이다. '채근담'에 이르길 "덕은 재능의 주인이고, 재능은 덕의 하인이다. 청렴하지만 포용력이 있고, 생각이 있으면서도 결단력이 뛰어나다. 오래 웅크린 사람이 높이 난다. 인생에서 한 줄을 줄이면 그만큼 초탈할 수 있다. 꽃은 반쯤 피었을 때를 보고, 술은 거나하게 마신다. 난관에 부딪쳤을 때는 인내심을 초지일관하라"고 했다. 이런 선인의 지혜를 책에서 배울 일이다.



/김정열 충북도 식품의약품안전과·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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