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기 선진국 진입
그러나 이같은 물적·양적 성장 가도를 달리며 '서방 따라잡기'에 올인한 나머지 소홀히 한 것과 잃어버린 것은 없는 지 주변을 돌아볼 자기성찰의 시대가 도래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나만 잘 되려고 내달리지 않았나. 내 밥그릇만 챙기려고 반칙, 새치기, 부정부패를 적당히 저지르고 끼리끼리 눈감아 준 우리 아닌가. 세간에는 '헝그리(hungry)정신' 뒤에 '앵그리(angry)정신'이 팽배하다는 냉소적 뒷말도 나돈다. 허리띠를 졸라매 배고픈 건 참았지만 반칙과 새치기 비리 특권 특혜 등으로 배부른 건 참지 못하는 불신과 불만이 우리 사회에 내재돼 있다는 것이다. 간단히 두 가지 사례를 찾아보자. 우선 신라 진평왕 때 당나라에 가서 명장이 된 설계두 장군이 떠오른다. 그는 골품제도로 인한 기회박탈로 실력이 출중해도 겨룰 기회조차 없었는데 당나라에서는 명장이 된 것이다. 또 재일교포가 된 유도선수 추성훈은 한국에서 아무리 잘해도 한판승이 아니면 이길 수 없었다. 판정에는 파벌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일장기를 달고 한국대표와 결승전을 치렀는데 판정이 공정해 승리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선택한 사회는 바로 공정한 사회였다.
-절차와 결과는 공정한가
공정사회 정의에 대한 논란은 많이 있지만 두 인물을 통해 본 공정사회는 기회균등의 사회다. 흔히 말하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다. 개천에 물이 없으면 물을 대 용이 되도록 키우는 그런 사회다. 난해할 지 모르겠으나 '절차적 공정성(procedural justice)'을 보자. 이 말은 실력있는 사람을 가려낼 수 있는 '절차'가 공정한 것이다. 그 '절차'로 실제로 실력있는 사람을 가려내야 공정성이 실질적으로 확보된다. 다시 말해 절차적 공정성은 절차가 공정한가를 가름하는 준칙이고 실질적 공정성은 결과가 공정한가를 가름하는 준칙이다. 한국교원대 김주승 교수(사회교육)는 이 실질적 공정성은 기회균등에서 확보된다고 말한다. 공정한 사회가 무엇이고 공정한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주장하는 바가 각기 다르다. 쉽게 보자. 거창한 구호나 주장은 뒤로 하고 공직자든 사업가든 진정으로 자신이 수행하는 업무에 대해 항상 불공정한 게 뭔지를 염두에 두고 불공정한 일을 하지 않으면 된다. 특히 공직자는 인사관계와 계약관계에서 정해진 룰에 따라 절차가 공정하고 결과가 공정하도록 업무를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김덕만 한국교통대 교수·前 국민권익위 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