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성과 위주의 초고속 압축성장으로 서방경제 강국들을 초단기간에 따라잡은 지구촌 유일국가다. 그 결과 2010년 말 유엔개발계획(UNDP)이 한반도에서 깃발을 내리고 철수했다. 이는 한국이 서방원조 수혜국에서 벗어나 공여국으로 바뀐 것을 의미한다. 또한 2010년에는 유엔 가입 19년만에 G20서울정상회의 개최국으로, 강대국 정상들을 모아 놓고 회의를 주재하는 좌장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는 60년 전 전쟁의 폐허 잿더미에서 개발주도 산업화를 단기에 이룩해 배고픔을 해결하고 민주화에도 성공해 선진국 반열에 당당히 올라선 것이다.


-초단기 선진국 진입


그러나 이같은 물적·양적 성장 가도를 달리며 '서방 따라잡기'에 올인한 나머지 소홀히 한 것과 잃어버린 것은 없는 지 주변을 돌아볼 자기성찰의 시대가 도래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나만 잘 되려고 내달리지 않았나. 내 밥그릇만 챙기려고 반칙, 새치기, 부정부패를 적당히 저지르고 끼리끼리 눈감아 준 우리 아닌가. 세간에는 '헝그리(hungry)정신' 뒤에 '앵그리(angry)정신'이 팽배하다는 냉소적 뒷말도 나돈다. 허리띠를 졸라매 배고픈 건 참았지만 반칙과 새치기 비리 특권 특혜 등으로 배부른 건 참지 못하는 불신과 불만이 우리 사회에 내재돼 있다는 것이다. 간단히 두 가지 사례를 찾아보자. 우선 신라 진평왕 때 당나라에 가서 명장이 된 설계두 장군이 떠오른다. 그는 골품제도로 인한 기회박탈로 실력이 출중해도 겨룰 기회조차 없었는데 당나라에서는 명장이 된 것이다. 또 재일교포가 된 유도선수 추성훈은 한국에서 아무리 잘해도 한판승이 아니면 이길 수 없었다. 판정에는 파벌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일장기를 달고 한국대표와 결승전을 치렀는데 판정이 공정해 승리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선택한 사회는 바로 공정한 사회였다.


-절차와 결과는 공정한가


공정사회 정의에 대한 논란은 많이 있지만 두 인물을 통해 본 공정사회는 기회균등의 사회다. 흔히 말하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다. 개천에 물이 없으면 물을 대 용이 되도록 키우는 그런 사회다. 난해할 지 모르겠으나 '절차적 공정성(procedural justice)'을 보자. 이 말은 실력있는 사람을 가려낼 수 있는 '절차'가 공정한 것이다. 그 '절차'로 실제로 실력있는 사람을 가려내야 공정성이 실질적으로 확보된다. 다시 말해 절차적 공정성은 절차가 공정한가를 가름하는 준칙이고 실질적 공정성은 결과가 공정한가를 가름하는 준칙이다. 한국교원대 김주승 교수(사회교육)는 이 실질적 공정성은 기회균등에서 확보된다고 말한다. 공정한 사회가 무엇이고 공정한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주장하는 바가 각기 다르다. 쉽게 보자. 거창한 구호나 주장은 뒤로 하고 공직자든 사업가든 진정으로 자신이 수행하는 업무에 대해 항상 불공정한 게 뭔지를 염두에 두고 불공정한 일을 하지 않으면 된다. 특히 공직자는 인사관계와 계약관계에서 정해진 룰에 따라 절차가 공정하고 결과가 공정하도록 업무를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김덕만 한국교통대 교수·前 국민권익위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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