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투표소 투표 흐름도 및 역대 대통령 인물사진

제17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하루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bbk 연루 의혹에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관련, 여·야가 '이명박 특검법'을 놓고 전에 없는 국회내 꼴불견을 연출하는 등 혼탁양상이었다. 충청일보는 선거를 하루 앞둔 18일, 대통령 선거 절차 등과 역대 대통령을 자세히 소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로 했다. / 편집자 주



■투표 절차

"17대 대통령 선거 이렇게 하세요"...신분증 꼭 지참…도장없어도 가능



향후 5년간 대한민국 정부를 이끌 대통령은 누구될까. 대한민국 3765만여 유권자들은 19일 직접 투표를 통해 차기 대통령을 선출한다.

투표는 이날 오전 6시 전국 1만3178곳의 투표소에서 투표관리관이 투표개시를 선언하며 시작돼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이번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만19세도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돼 1988년 12월20일 이전에 태어난 국민들은 모두 투표할 수 있다.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신분증이 필요하며 신분증은 주민등록증·여권·운전면허증·공무원증·국가유공자증·장애인등록증 등 공공기관이나 관공서가 발행한 것에 한한다. 사진도 물론 부착돼 있어야 한다. 민간이 발행한 것은 효력이 없다.

집으로 배달돼 온 투표안내문에는 본인의 선거인명부 번호가 적혀 있는데 이를 알고 가면 투표소에서 신분확인 절차를 빠르게 할 수 있다.

투표절차는 먼저 신분증으로 본인임을 확인한 뒤 선거인명부에 서명하거나 지장을 찍는다. 그 다음 투표용지 배부석에서 투표용지를 받아 귀퉁이에 있는 번호지를 떠내 번호지 투입함에 넣은 뒤 기표소에서 기표를 하고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으면 된다.

기표는 인주를 찍을 필요가 없다. 저절로 인주가 나오는 장치가 된 기표 기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볼펜이나 지장, 도장 등으로 기표하거나 투표용지에 글을 쓸 경우 무효표로 간주된다. 기표된 인주가 투표용지를 접으면서 다른 곳에 묻을 우려가 있는데 개표소에서 정확히 판단 하기 때문에 실제 무효표로 처리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게 선관위에 설명이다.

투표용지는 12명의 대선후보가 다 적혀 있지만 심대평, 이수성 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해 이들 후보에 기표할 경우 무효표로 처리된다. 시각 또는 신체장애로 스스로 기표할 수 없는 유권자는 투표 보조용구를 사용하거나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명의 보조자를 동반해 투표할 수 있다. 투표 마감 시각인 오후 6시가 넘어도 그 시각까지 투표소에 도착한 유권자는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다 투표할 수 있다.



■당선자 예우는

19일 12시간의 투표를 통해 대선 후보 중 가장 많이 득표한 후보가 '대통령 당선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 게 된다. 1위 득표자가 전체 유효투표 수의 20%에 불과하든 90%에 육박하든, 또 1위가 2위보다 단 한 표만 앞서도 현행 헌법 및 선거법상 무조건 '대통령 당선자'가 된다.

이번 대선에서는 전자개표기가 동원돼 이르면 19일 오후 8시께는 당락 윤곽이 드러나고 자정께는 당선자가 확정될 전망이다.

따라서 중앙선관위는 개표가 완료되는 20일 새벽 전체회의를 열어 유효 투표의 다수를 얻은 후보를 대통령 당선자로 결정, 공고한 직후 임채정 국회의장에게 통지하고 같은 날 오전 10시 당선증 교부식에서 고현철 중앙선관위원장이 당선자에게 당선증을 건네는 것으로 당선자 확정 절차는 마무리된다.

당선자는 20일부터 내년 2월25일 정식 취임할 때까지 '예비 대통령' 수준으로 헌법 및 통합선거법에 따라 신분을 보장받는다.

당선자는 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당선을 확정하는 대로 곧바로 대통령경호실법과 경찰법에 따라 청와대 경호실로부터 본인과 부인은 물론, 부모·자녀 등 직계 존비속까지 신변 경호를 받게 된다.

방탄승용차도 제공받으며, 당선자 본인의 요청이 있을 경우 대통령 전용기와 전용 헬리콥터 등도 임시로 이용할 수 있다. 이밖에 정부 각 부처의 차관급 이상으로부터 주요 현안과 관련한 보고를 수시로 받을 수 있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제1, 2, 3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1875년 4월18일생·사망)

독립운동갇초대대통령. 호는 우남(雩南). 황해북도 평산 출신이다.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워싱턴대학을 졸업했으며 하버드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의 영향을 받은 영세중립론'으로 프린스턴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당하자 친일정권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이어 초대 국회의장·대통령이 됐다. 1954년 초대 대통령에 대한 중임제한조항 철폐를 골자로 한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으로 3선 대통령이 됐고, 60년 대통령에 4선됐으나 4·19로 하야, 하와이로 망명해 그 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제4대 윤보선(尹潽善) 대통령(1897년 8월26일생·사망)

호 해위(海葦). 충남 아산(牙山) 출생이며 영국 에든버러대학을 졸업하고, 8·15광복과 더불어 정계에 투신, 미군정청 농상국 고문에 취임했다. 이어 한영협회장·민중일보사 사장 등을 지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에 당선, 1959년 민주당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후 대통령선거에 민주당후보로 입후보해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인해 1962년 사임하고, 1963년 민정당을 창당해 그 해 대통령선거에 대통령후보로 출마, 박정희 후보와 겨뤘으나 실패하고, 1967년 제6대 대통령에 출마해 또다시 박정희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제5, 6, 7, 8, 9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1917년 11월14일생·사망)

경북 선산(善山) 출생. 가난한 농부인 박성빈(朴成彬) 선생과 백남의(白南義)여사 사이에서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만주의 신경군관학교를 거쳐 1944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댜

1961년 5·16군사 정변을 주도하고 7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됐으며 1963 12월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해 9대 대통령까지 연임했다.

1974년 8월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북한의 지령을 받은 조총련계 문세광에게 저격당해 사망했고, 박 대통령도 1979년 10월26일 궁정동 만찬석상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저격으로 급서(急逝)했다.



▶제10대 최규하(崔圭夏) 대통령(1919년 7월16일생·사망)

호 현석(玄石), 자 서옥(瑞玉). 강원 원주(原州) 출생이다. 1941년 일본 도쿄고등사범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43년 만주 국립대동학원을 졸업했다. 1952년 주일대표부 총영사, 1959년 주일대표부 공사로 승진, 그 해 외무부차관이 됐고, 1971년 대통령 외교담당 특별보좌관에취임해 1972년 남북조절위원회 위원 자격을 평양을 다녀왔다. 1975년 국무총리에 기용되고, 1979년 10·26사건 이후 대통령권한대행을 거쳐 그 해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했으나 1980년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제11, 12대 전두환(全斗煥) 대통령(1931년 1월18일생)

경남 합천 출생. 1951년 대구공고를 졸업하고, 1955년 육군사관학교를 제11기로 졸업했다. 1961년 5·16군사정변 직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발탁돼 의장실 민원비서관, 1963년 중앙정보부 인사과장, 1969년 육군본부 수석부관을 지냈다.

1979년 초 국군보안사령관 시절인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자 12월12일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했다. 이후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선으로 제11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1981년 1월 창당된 민주정의당 총재가 돼 2월 개정된 새헌법에 따라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제13대 노태우(盧泰愚) 대통령(1932년 12월4일생)

대구 달성 출생. 1955년 육군사관학교, 1968년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1974년 준장으로 진급해 공수특전여단장과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 등을 역임하는 등 1979년 '12·12사태'에 가담해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됐다. 1981년 대장으로 예편한 후 외교안보담당 정무제 2장관, 1982년 체육부장관을 거쳐 내무부 장관, 1983년 서울올림픽대회 및 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을 역임했다.

1987년 6월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돼 '6·29선언'을 발표, 정국(政局)을 대화합의 국면으로 전환시켰다. 8월 민정당의 제2대 총재, 12월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돼 1988년 제6공화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제14대 김영삼(金泳三) 대통령(1927년 12월20일생)

경남 거제 출생. 1952년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국무총리 장택상의 비서가 됐다. 1954년 26세의 최연소자로 3대 민의원 의원에 당선된 후 5·6·7·8 ·9·10·13·14대 의원에 당선됨으로써 9선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 사이 민주당 대변인 2번, 민중당 등 야당 원내총무 5번을 역임하고 1974·1979년의 신민당과 1987년의 통일민주당 등 야당총재를 3번 지냈다.

1990년 민주정의당 노태우 총재,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총재와 통합해 민주자유당을 창당, 대표최고위원이 됐다. 1992년 12월 14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 1993년 2월 취임함으로써 32년간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종식시키고 문민(文民)정부를 출범시켰다.



▶제15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1926년 1월6일생)

1925년 전남 신안에서 출생했고, 1963년 경희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했다. 1960년 민의원에 당선된 후 1971년까지 6·7·8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1997년 10월 자유민주연합과의 야권 후보단일화를 이끌어낸 뒤 같은 해 12월 15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돼 한국 정치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룩했다.2000년 6월 13~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대로 평양을 방문해 6·15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또한 50여년 간 지속돼 온 한반도 냉전과정에서 상호 불신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에의 새로운 장을 여는 데 크게 기여한 공로로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제16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1946년 8월6일생)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경남 김해의 시골 농가에서 태어나 1966년 부산상고를 졸업했다. 1975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대전지법 판사를 지내다 1978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제13·15대 국회의원과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했고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이 과정에서 지역주의의 장벽에 막혀 네 번이나 낙선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으나 현실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다. 2002년 최초의 국민경선제에 의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고, 그 해 12월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지지로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제17대 대통령은 ? /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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