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고 길게 살래, 굵고 짧게 살래?", 굵고 길게 살겠다하면 그만일 텐데 이런 딜레마 같은 질문 앞에 그래도 고심을 하게 되는 것을 보면,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보통 한 인생이 발휘할 수 있는 열정이 어느 정도 한정되어 있을 것 같기 때문인가 보다. 그래도 드물게는 남들보다 훨씬 더 강렬하거나 혹은 더 오래, 더 많은 열정을 발휘하는 삶도 있는 것 같다. 누보로망 작가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 작가 나탈리 사로트(1900-1999)는 오래도록 열정을 살아온 삶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 지금도 백 살 동안 살기 어려운데 백년도 훨씬 더 전에 태어나 백세를 산 것만으로 긴 인생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에 옥스퍼드를 방문한 작가가 한 경비에게 자기도 거기서 잠시 공부한 적이 있었다며 추억을 들려주던 중 그가 몇 년도였는지 묻자 "1920년"이라는 바람에 그가 깜짝 놀랐다는 일화도 있다. 수명은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데다, 짧으면서도 열정적인 삶도 있고, 긴 세월 속에서는 모든 인생이 거기서 거기일 테니 오래 산 것만 가지고 그렇게 내세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로트의 삶은 단순히 길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한결 같게 자신의 문학 외길에 꺼지지 않는 열정을 꾸준히 쏟아온 점에서 감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마흔 살에 첫 작품을 출판한 뒤로 사로트는 다작은 아니지만 꾸준히 창작 활동을 이어갔으며 1995년에는 96세의 나이에 <여기>라는 신작을 발표하여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문학사에 남을 권위 있는 작가만을 선별해 고급 양장본 플레이아드 판으로 발행하는 갈리마르출판사에서는 사로트의 전 작품들을 모아 이듬 해 한 권의 플레이아드 판 '전집'으로 출판한다. 작가들의 사후에야 플레이아드 판이 나오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생존 작가의 전집을 내기로 출판사에서 결정한데는 아마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작가 생전에 전집을 헌정해주려는 배려도 있었을 것이다.

설마 97세에 또 작품이 나오겠느냐 하지 않았을까 싶다. 불과 1년 후에 98세 사로트는 예상을 뒤엎고 진짜 마지막 작품 <여시오>를 들고 나와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한다. 그래서 사로트 전집에는 아직 마지막 작품은 빠져있다. 사로트는 여러 차례 신작을 통해 이제껏 아무도 발굴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곤 했는데, 마지막 작품 또한 소설과 희곡의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작가 특유의 언어유희와 난센스로 다시 자기 혁신을 이루었다. 자신의 플레이아드 판을 늘 책상 한쪽에 소중히 두었던 사로트는 죽기 며칠 전까지도 스트린드버그의 희곡을 읽어가며 차기 희곡 작품을 구상하였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그녀가 지녔던 한결같은 열정과 노력 그 속에서 역설적으로 멈추지 않았던 혁신과 성장은 삶보다도 긴 여운을 자아내는 듯하다.



/황혜영 서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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