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대통령을 선출한 이번 선거는 아쉬움이 많은 선거였다. 후보들은 선거운동기간 내내 유권자의 '표심'을 얻으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거리마다 요란한 현수막을 내걸고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유세하고 손이 붓도록 악수공세를 폈다. 매스컴에 대대적 광고를 내고 대통령후보 tv토론회에도 나가 열띤 말싸움도 벌였다. 하지만 정책 대결이 없었다.

이번 선거는 네거티브로 시작해 네거티브로 끝났다. 실천 가능한 공약들을 내놓고 경쟁하는 매니페스토 선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주선으로 '매니페스토 정책선거 실천협약식'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말짱 헛구호였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독주 탓으로 다른 후보들은 bbk에 올인한 꼴이 됐다. 후보의 도덕성 검증도 중요하나 거기에만 함몰돼 다른 모든 것은 무시됐다. 선거가 네거티브에만 흘러 유권자들의 정치 불신만 키운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정치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투표를 포기한 유권자도 많았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외면하는 정치가 온전할 리 없다. 대선이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투표율도 낮아진 것은 순전히 정치권의 책임이다.

선거 관련 법제도 미흡한 구석이 많다. 주요 후보라고 간추린게 6명이나 돼 토론다운 토론은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었다.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면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 각종선거를 정돈하는 작업부터 서두를 필요가 있다. 이번 대선이 혼탁해진 가장 큰 이유는 내년 4월로 임박한 총선에서 찾을 수 있다. 오죽하면 '대선은 예선이고 총선이 본선'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왔겠는가.

다만 돈 안 쓰는 선거 풍토가 자리를 잡아 가는 것은 우리 정치의 지평을 넓히는 새로운 희망이다. 이번 대선에서의 위법행위가 제16대 때의 4분의1로 준것이 그 증거다. 망국병으로 일컬어지는 지역주의가 완화될 기미를 보인 것도 매우 반가운 현상이다. 정치권은 이번 대선에서 드러난 부정적인 측면들을 개선하고 긍정적인 측면은 발전시켜 내년 총선에서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새 정치'를 일구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