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 세밑이 다가오면 일본 사람들의 마음은 설레기 시작한다. 모든 연중행사가 양력에 따라 진행되는 일본에서는 오쇼가쓰(お正月), 즉 신정이 1년 중 최대의 명절이기 때문이다. 명치유신(1868) 전에는 일본에서도 음력을 사용했으나, 명치5년에 태양력이 채택되면서 8월의 오봉(お盆)과 함께 정월(正月)도 양력에 맞춰 매년 1월에 쇠게 됐다. 일본에서는 12월을 다른 표현으로 '시와스(師走)'라고 하는데, 이는 평소에 느긋하게 제자들을 대하던 스승(師)도 12월만큼은 동분서주하면서 일을 봐야 할 정도로 바쁘다는 뜻이다. 오쇼가쓰를 맞기 위해 그들이 먼저 하는 일은 '넹가죠(연하장)' 쓰기다.

대개 '깅가신넹(근하신년)'이라든가 아케마시테 오메데또우고자이마스(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쓰는데,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적게는 수십 장에서 많게는 백 장 넘게 연하장을 보낸다. 특히 사회적 활동이 많은 남성의 경우 연하장을 주고받기는 단순한 소식교환을 넘어 지역사회나 직장생활에서 스스로의 위상을 재확인하는 매우 중요한 행사다. 인터넷으로 연하장을 보내는 사람이 늘면서 그 양이 줄기는 했어도 아직까지 받는 연하장의 양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잣대다.

혹시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람에게 연하장을 받지 못했다거나, 일부러 어떤 사람에게 연하장을 보내지 않았다면 그것은 절교선언과도 같다. 설이나 추석 때 한국의 민족대이동만은 못하지만 연말연시에 해외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요즘에도 모처럼의 오쇼가쓰를 가족과 보내기 위해 귀성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오미소카(섣달그믐날)' 저녁에는 모두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아 그 해에 활약했던 남녀 가수들이 펼치는 '고오하쿠 우타갓센'을 보다가 자정을 전후해 '조야노까네(제야종)' 소리를 들으면서 '도시꼬시소바(해넘이 국수)'를 먹는 것도 빠지지 않는 해맞이 풍경이다.

새해가 밝아지면 가내안전과 소원성취를 기원하러 가까운 '신사(神社)'나 절을 참배하는데 이를 '하쓰모오데(初詣)'라 하며 도쿄의 '메이지징구(明治神宮)'처럼 불과 사나흘 동안 수백만 명이 다녀가는 곳도 있다. 오쇼가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통음식이다. 한국의 떡국과 비슷한 '조오니'도 인기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을 하나 꼽으라면 '오세찌'를 들 수 있다.

어묵, 달걀, 멸치처럼 오래 보존 가능한 식재료로 만드는 이 요리는 신선함을 생명시하는 여느 일본음식과 달리 해가 바뀌기 전 미리 준비해 놓았다가 끼니 때마다 조금씩 꺼내 데우지 않고 먹는 것이 특징인데 평소 집안일 하느라 고생이 많은 주부들을 이때만큼은 쉬게 해주자는 배려라고 한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경기 침체가 오래 지속되면 한 가닥 희망을 찾아 점이나 해몽에 관심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지만 예부터 일본에서는 1월 2일에 꾸는 꿈을 '하쓰유메(初夢)'라고 하여 '이치후지 니타카 산나스비'라 해서 후지산(富士山), 매(맹금), 가지(채소)의 순으로 길몽으로 친다.



/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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