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지도자ㆍ시민ㆍ학생들 애도 추모 물결

18일로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 발생 사흘째를 맞아 미국 사회가 차츰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는 가운데 범인 조승희(23)씨의 범행 기록이 언론에 공개돼 수사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조씨가 사건 당일 기숙사에서 첫 범행을 한 후 공학관에서 두번째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기숙사 자신의 방에서 컴퓨터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자필 메모와 동영상, 사진기록을 만들어 미 nbc 방송에 보냈으며 이날 그 내용이 전격 공개됐다.

공개물에는 조씨가 칼과 권총을 들고 있는 모습과 총에 탄알을 장전하는 사진, 탄알을 책상에 정렬해놓은 사진은 물론 1천800개 단어를 사용해 부자에 대한 극도의 증오감을 드러낸 성명서(manifesto)가 포함돼 있다.

소포 발신인 이름 대신에 '이스마엘'이라고 적은 점도 눈에 띈다.

그런 가운데 사건 현장인 버지니아공대는 휴교령이 내려져 있으며 차츰 평온을 되찾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애도의 물결도 넘치고 있다.

버지니아공대 안팎 분위기 = 희생자가 집중 발생한 노리스홀 주변에는 희생자 넋을 기리는 추모의 글을 남기려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 대학 학생회는 참사에 즉각적인 관심과 애도를 표명한 한국 정부에 감사한다는 이메일을 주미 한국대사관에 보냈으며, 여기에 한 학생의 그릇된 행동이 한국민과의 장벽이 되지 않을 것이며 폭력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단합케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학교 당국도 아시아계 학생들에게 사건의 과장 또는 왜곡을 피하기 위한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는 한편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안전대책에 나섰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이날 현재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코스타스 카라만리스 그리스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 국가원수들의 애도의 뜻이 답지했다.

심지어 외교무대에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이란과 베네수엘라 관리들도 애도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범행 관련 우편물로 수사 새 국면 = 조씨의 우편물이 범행 전모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전망이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우편물 내용 가운데 dvd로 저장된 동영상에 주목하고 있다. 면밀한 분석을 거치면 조씨의 범행 동기와 행적을 밝혀줄 핵심증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nbc 사이트를 통해 인터넷에 공개된 동영상에 따르면 "얼굴에 침 뱉으면 어떤 기분인 지, 살아있는 상태에 불로 지지면 어떤 기분인 지. 목에 쓰레기들어 있는 게 어떤 기분인 지 아느냐"고 했는 가 하면 "오늘을 피할 수 있는 수천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내 피를 흘리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면서 부유층에 대한 극도의 증오가 드러나 있다.

8년전 콜럼바인 총기 난사사건 범인들을 '순교자'로 지칭하고 자신이 사회에 경각심을 주기위해 범행을 결심한 듯한 말을 남긴 점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우편물 발송수법도 눈길을 끌고 있다. 이는 지난 1970년~1990년대 이른바 '유나보머'(unabomber)라고 불린 연쇄 편지폭탄 테러범 시어더 카진스키가 '유나보머 선언문'이라고 명명된 '산업 사회와 미래'라는 제목의 편지를 통해 현대 기술문명의 위험성 경고를 자신의 범행 목적이라고 주장한 것을 모방했다는 분석이다.

버지니아공대 대학경찰 당국이 기자회견을 열어 조씨가 2005년에 두차례의 여성 스토킹 혐의로 조사 대상이 됐었다고 밝힌 점도 주목된다.

경찰 측은 당시 조씨를 조사했으나 직접적인 위협은 아니라고 보고 학교징계위원회에 넘기는 정도로 그쳤다.

그 당시 조씨는 자살할 가능성도 있어 카운슬러와 상담했는 가 하면 잠시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던 사실도 공개됐다. 조씨의 이런 행적은 이번 사건의 동기를 밝히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의문 = 우편물 공개로 일부 의문점은 해소됐다.

당초 치정으로 인해 32명이라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됐으나 dvd 동영상을 통해 미국 사회에 대한 조씨 나름대로의 '분노'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돼 어느 정도 해소됐다. 또 1차 범행과 2차 범행 사이의 1시간30분∼2시간의 묘연했던 행방 의문도 해소됐다.

그러나 왜 조씨가 자신이 머물던 곳이 아닌 다른 기숙사에서 2명을 사살한 1차 범행을 했느냐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 곳의 희생자인 에밀리 제인 힐셔양은 2005년 조씨의 스토킹 대상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조씨가 왜 그녀를 특정했는 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1차 범행후 nbc에 보낼 우편물을 만들어 차량을 이용해 학교 밖의 우체국까지 가서 보낸 점도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 대목.

노리스홀에서 2차 범행을 저지른 점도 설명이 안되고 있다. 노리스홀 주변은 대학본부 건물인 버러스 홀을 비롯해 강의동이 많기 때문. 조씨가 이 곳을 선택한데에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미 수사당국은 사건발생 1주일 전에 조씨가 독일어 시간에 여자친구와 다투다가 담당교수로부터 꾸지람을 받은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조씨가 어떻게 범행후 최대 2시간 동안 경찰의 감시망을 피해 교내를 활보할 수 있었는지도 의문점이다. 우편물에 발신자 이름으로 이스마엘이라고 적고, 그리고 조씨 자신의 팔뚝에 '이스마엘의 도끼'라고 적혀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이 또한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 연합뉴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