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서 生 마감하고 싶다"
"못말리는 연기사랑 '활활'

[충청일보 신홍균기자] 올 초 청주예술의전당 대공연장에서 연극 '맹진사댁 경사'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그동안 영화, 뮤지컬 등으로 모두에게 친숙한 작품이라 자칫 진부할 수도 있었으나 배우가 객석을 통해 등·퇴장하고 무대 한 편에서 악사 두 명이 효과음을 내는 등 흥미로운 연출로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 작품의 연출은 청주와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지역 출신 연극배우 이은희씨(사진)가 맡았다.

"연기 생활을 하면서 크고 작은 워크숍에서 연출을 종종 하긴 했으니 처음은 아니지만 제대로 돈을 받고 한 연출은 지난 2010년 '그 여자들, 다시 통닭을 먹다'였어요. 그 다음해에 '인생 차압', 2012년 '서울은 탱고로 흐른다', 작년에는 '귀싸대기를 쳐라'를 연출했고요. 맹진사댁은 2011년에도 연출했던 작품입니다."

그는 지금은 거의 40기 쯤 됐을 충북여고 연극반 '하나로'의 13기 멤버였다. 졸업하면서 바로 극단 생활을 시작하다가 스물 셋 되던 해 서울예전 연극과에 들어갔다. 2000년 졸업하고 국립극단에 연수단원으로 들어간 뒤 2002년 정단원에 위촉됐다. 기자는 2007년 극단 청사의 '돼지와 오토바이' 공연에서 이 씨를 처음 봤다. 그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전 아내를 비롯해 간호사, 약혼녀, 친구 아내 등 아홉 가지 캐릭터를 혼자서 연기했다.

"'돼지와 오토바이'는 1998년부터 해왔던 작품이에요. 정기 공연도 있었고 찾아가는 문화공연으로도 했고요. 1인 다역이 아무래도 감정 소비가 많다 보니 힘들죠. 하지만 남자 주인공은 공연 내내 퇴장 없이 극을 이끌어 가는 반면 저는 조금이지만 숨 고를 시간이 있어요. 그런 장·단점이 있죠."

연극을 하면서 무엇이 제일 좋냐는 질문에 그는 상당히 난감해했다.

"멋있는 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하려면 무척 어려운 질문이에요. 그런데 그건 있어요. 작품을 하면서 '이 맛에 하지' 이런 생각은 안 해요. 그렇지만 힘들게 공연하고 쓰러지다시피 한 뒤에도 다음날이면 또 하고 싶어져요. 그래서 이 바닥을 못 떠나는 것 같아요."

머물러 있지 말고 항상 전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는 이 씨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순간은 국립극단에 몸담고 있던 시절 오태석 작가의 '태'를 작업할 때다.

"재작년 작고하신 장민호 선생님과 더블 캐스팅 된 오영수 선생님, 두 분이 머리 속에 박혀있어요. 연습 중 가진 술자리에서 당시 환갑을 넘기신 오 선생님이 장 선생님께 무릎 꿇고 술잔을 드리면서 '언제쯤이면 저도 선생님처럼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요' 하고 여쭈니까 장 선생님이 허허 웃으시면서 '열심히 하면 되지. 잘 하고 있잖아'라고 하시더군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제가 환갑 쯤 되면 내 연기 인생이 집대성돼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연세에 그렇게 조언을 구하시는 모습을 보고 '그게 아니구나. 나도 교만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 모습이 그림처럼 정말 아름다웠어요."

여자 연출로서 힘든 점은 없냐고 물으니 그런 것은 없는데 다른 점이 문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여자라 힘든 점은 별로 없는데 연출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지 않고 20여 년 연기하며 느낀 연출 방향만 가지고 하다보니 아쉬운 부분이 생겨요. 배우 출신이라 전체의 틀보다 디테일에 신경이 쓰여요. 숨을 한 번 쉴 때와 두 번 쉴 때, 언제 내쉬고 언제 들이쉬느냐에 따라 관객 반응이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큰 그림을 놓치기 일쑤에요. 나무보다 산을 보는 공부를 더 많이 해야겠어요. 저는 나이 들어서나 병들어 죽기보다, 작품을 하는 도중 무대에서 떨어져 죽거나 떨어지는 조명에 맞아서 죽는 쪽을 택하고 싶어요."

/신홍균기자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