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나흘이 지나고 나니 벌써 이월도 사흘째다. 오늘은 입춘(立春)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는가. 설에 참 많은 전화 메시지를 받았다. 그 주조(主調)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거다. 솔직히 새해는 이미 시작된 지 한 달이나 지났지 않는가. 그런데도 음력설을 맞아 덕담은 아직도 '새해 복 많이'다. 참 아이러니 하다. 어찌 보면 표현력 부재가 여실히 드러나는 인사말들 아닌가.

그런데도 나 역시 같은 어구로 대꾸한다. 그렇다. 새해를 맞은 지 이미 한 달 이상 지났다손, 우리는 음력 새해를 기억하며 다시 시작하고 싶다. 살짝 돌아보면 사실 어영부영 하는 사이 일월 한 달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새해를 시작하면서 두려움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야무진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독서·운동·외국어도 착실히 하고, 몸도 마음도 잘 가꾸고, 가정에서 아내에게 충실한 남편이고, 자녀들에게 존경받는 아비가 되고, 사무실 일도 열심히 해서 섬김의 도리를 잘 하며 매출도 올리고, 교회에서도 더 많은 이들을 전도해 함께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책임을 맡아 일하고 있는 라이온스 단체에서도 더 많은 멤버를 확보해 효과적인 봉사도 펼치고…. 그런데 지난 한 달 돌아보니 허겁지겁 달려오기만 했을 뿐, 제대로 이룬 게 없다. 그러는 사이 어느 새 일월이 훌쩍 지나고 설 연휴를 맞았던 거다. 음력설을 맞고 보내며, 늦었지만 새해 새 출발을 꿈꾼다. 다른 이들이 '새해 복' 과 '청마의 기상'으로 덕담을 건네 오고 나도 그렇게 응답하면서, 우리 모두 다시 새해 새 출발을 기약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청마(靑馬)의 해도 음력으로 확인하는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에 근거를 둔 것 아닌가. 그러니 늦었다고 탓할 바도 아니다. 사실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일이다. 한 달을 보내고 새 달을 맞을 때나,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 마다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한편에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그 때문인지, 어느 해인가는 일월 한 달이 다 가도록 아무 계획도 없이 맥없이 보내다가 월말쯤 정신 차려 새롭게 출발하기도 했다. 당시, 마침 교회에서 새벽기도 설교를 맡은 김에 '크리스천 리스타트(restart)'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비로소, 살아있음이 의미 있고 섬김과 나눔의 도리를 다하기 위한 구체적 실행계획에 착수할 수 있었다.

그렇다! 리스타트다. 이미 이십사절기의 첫 절기로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다. 내게 주어진 한 해, 벌써 한 달은 지나갔지만 앞에 펼쳐질 남은 열한 달을 새롭게 시작한다. 생각이나 말로만 아닌 행동으로 실천해 나아가는, 그야말로 take action의 시작. 역동, 강인함, 건강함, 성공, 승승장구 등의 뜻을 가진 청마(靑馬)의 해 갑오년(甲午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better late than never)"라는 격언을 생각하며 다시 시작한다. 힘찬 새해, 비전의 새해. 나를 통해 세상이 밝아지고, 나를 통해 세상이 힘이 나는 존재로 살아가자. 다시 새해를 시작하며, 입춘을 맞은 내 마음의 문설주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고 입춘축(立春祝)을 써 붙인다.



/유재풍 법무법인 청주로 대표변호사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